지난 14일 부경대에 장학금 800만원을 기부한 허정순(74) 할머니의 소회다. 1970년에 7남매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집와 평생 어렵게 살아온 허 할머니는 명절날 아들과 두 딸이 준 용돈과 생활비를 3년간 모아 기부했다. 부경대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입학생 4명의 입학금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부경대는 허 할머니의 아들 이정호(45)씨의 모교다.
허정순씨, 부경대에 장학금 800만원 기부
형편 어려운 7남매집 맏며느리로 시집 와
가사도우미, 환경미화원 등 하며 자식 키워
“일할 수 있을 때까지 매년 장학금 기부할 것”
가정 형편이 어려워 이사를 16번 다녔다는 허 할머니는 2014년부터 아들이 산 주택에 살고 있다. 허 할머니는 “처음으로 우리 집을 갖게 되자 대문 앞에 서서 한참 동안 집을 바라봤다”며 “꿈같았다”고 회고했다.
남편의 벌이가 시원찮은 데다가 시댁 식구 11명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허 할머니는 환경미화원부터 가사도우미, 건설현장 노동일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다. “가정주부로 15년간 살다가 처음으로 가사도우미로 나가던 날이 1985년 5월 11일이에요. 인력센터에 가서 기다리다 제 차례가 와서 가사도우미로 처음 일할 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전 9시부터 12시간을 일해도 가사도우미 일당은 5000원에 불과하다. 자식들 교재비로 쓰고 나면 생활비로 쓸 게 없었다. 허 할머니는 일당 5만원을 주는 건설현장 노동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공사장에서 못 뽑는 일을 했다”며 “한 달에 10번 정도 공사장에 나갔다. 더 나가고 싶어도 기회가 오지 않더라”고 말했다.
3남매가 직장에 취업하고, 기초노령연금을 받기 시작하면서 허 할머니는 일을 그만뒀다. 30년 넘게 일한 탓에 양쪽 무릎 연골이 다 닳아 2015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았다. 2018년에는 양쪽 어깨 수술을 받았다. 열 손가락에는 퇴행성 관절염이 와서 주먹을 쥐지도 못하고, 수시로 탱자 가시로 찌르는 것처럼 손가락 마디가 아프다고 한다. 그는 “기부를 결심하고 나니 아픈 줄도 모르겠고 기분이 좋아졌다”며 “인제야 나도 가치 있게 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허 할머니는 수술비로 쓰고 남은 보험료까지 장학금에 보탰다고 한다.
허 할머니의 목표는 적은 금액이라도 매년 장학금을 기부하는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노인 일자리 사업에 나가 청소일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평생 한라봉 한 번 못 사 먹을 정도로 어렵게 살았지만 세상에는 나보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이 더 많아요. 기부하는 나를 보고 자식들도 가정형편이 나아지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합디다. 이것만으로도 제 인생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것 아닐까요.” 허 할머니는 올해 설날을 앞두고 처음으로 한라봉 1만원치를 샀다고 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