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옥(64)씨는 지난 16일 전남 순천시 주암면 구산마을에 있는 자택을 찾은 기자에게 고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두 손을 내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70살이 되믄 요리책을 낼 건디 책에 얼굴 대신 손을 넣을라고 해요”라면서다.
500년째 전수받은 조청·내림반찬 솜씨
“아침에 밥맛 없을 때 한 숟가락만 뜨면 배가 안 고프다”며 김씨가 내놓은 건 조청에 으뜸도라지를 넣어 만든 도라지 수제 조청이다. 으뜸도라지는 최근 개발된 신품종으로 인삼의 주요 성분인 사포닌이 인삼의 8배 수준이다. 설탕과 방부제 없이 자연 그대로를 담았다.
1급수에서만 사는 토하로 만든 토하젓은 1년 365일 이 집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토하젓에 참기름과 깨, 매운 고추를 넣고 흰 쌀밥에 비벼 먹으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고 김씨는 말했다. 주암 저수지에서 잡은 자연산 토하를 갈지 않고 통째로 먹기 때문에 아삭한 식감이 살아있다. 찹쌀과 고춧가루를 토하와 같은 비율로 넣어 만든 다른 토하젓과는 다르다.
토하양념장과 도라지 수제 조청은 올해 처음 ‘남도명가(名家)’ 브랜드로 상품화돼 지난 6일부터 23일까지 롯데백화점에서 100세트 한정 판매 중이다. 롯데백화점 호남·충청 지역 박성훈(35) 바이어가 우연히 방송을 보고 지난해 10월 직접 찾아가 상품화를 제안했다. 김씨는 여력이 없다며 고사했지만 “다른 건 다 알아서 하겠다”는 바이어의 설득에 승낙했다. 김씨는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란 말이 있잖아요. 내가 포장이나 판매까지 생각하면 음식을 할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토하 양념장이 담긴 도자기도 백화점측이 서울 방산시장에서 직접 공수했다.
“음식은 밤 새워서도 해”
김 씨는 딸(40)에게도 똑같이 했다고 한다. 연세대에서 공학을 전공한 딸은 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 중이다. 명인으로 지정되면 전수자를 등록해야 한다는 말에 딸이 전수자를 자청했다. “딸한테 부엌일 한 번 가르친 적이 없는데 피는 못 속인갑써요.” 서울에 사는 딸은 매달 고향 집에 내려와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만학 열정…지난해 대학 졸업
70세까지 전통음식 요리책 내는게 목표
“한국인은 발효 식품을 먹어야 돼. 장독대를 지키는 삶이 국민을 위한 삶이여. 밥상이 약상이잖아. 좋은 음식을 먹어야 국민성도 좋아진당게. 애국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에요.”
순천=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