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곰=소인이 겨울잠을 자다 들으니 저 구중궁궐에 계신 통령의 신년사라. 내심 반가워 귀를 세웠는데 들을수록 마음의 동요가 일어 더 잘 수가 없었소이다. 점입가경이라, 우리가 기해년에 먹이를 찾아 온 산을 헤맬 적에 ‘주 52시간’ 경계령을 내려 일도 막히고, 새끼들도 벌집하나 찾기 힘든 세월을 보냈는데 통령께서는 살림살이도 소득도 나아졌다 하니 수풀 속 민심과는 너무 동떨어져 참담한 마음이오. 해서 이렇게 회의를 소집하게 되었으니 자유 의사로 할 말을 다 하시오. 그러자 인상이 말끔한 여우가 꼬리를 흔들며 연단으로 나온다.
여우 “좋은 것만 말해 포용성장”
벌 “남은 것 쏟으니 이게 분배”
독수리 “출입엄금 파해야 혁신”
개구리 “86책사보다 한 수 위”
◆ 벌=걸핏하면 침을 쏜다 해서 욕하건만, 나를 해치는 자에게만 그리하오. 나는 누구보다 부지런해서 ‘주 52시간’에도 아랑곳 않고 밤에라도 날아가 양식을 구하외다. 먹고 남은 걸 꿀통에 쏟으면 다른 이들이 먹으니 그거야말로 분배의 모범 아니겠소. 우리 같은 자영업자, 제조업자가 많아져야 포용도 가능하거늘, 세금에 최저임금에 사회보험에 비용이 날로 증가하니 어찌 날개를 조야로 움직일 수 있겠소. 태양광 반사 빛에 눈이 부셔 방향을 자주 잃거니와 산비탈 초목이 죽고 과실수가 말라죽으니 꿀 딸 곳이 마땅찮아 올해엔 새끼를 반만 쳤소. 생산자에게 짐을 다 씌우는 대신(大臣)들을 발견하면 독한 침을 쏘고 싶은 심정이오만 요즘 기력이 쇠해 침도 그리 효력이 없소이다. (좌중 침울). 독수리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의연히 연단에 날아오른다.
◆ 독수리=좌중 주목! 소인이 바로 혁신명장(名匠)이라. 그 넓은 초원지대를 두루 날아 먹이를 찾는 솜씨나, 공중에서 내리 꽂아 낚아채는 솜씨가 바로 혁신이오. 여러 동포들이 굶을 때에도 우리는 혁신 한 가지로 의연히 버텼소만, 문(文)정부 ‘혁신경제’란 멀리 문명국 CES박람회 입구에도 못간 것 아니겠소. 벤처 특구의 밤이 캄캄하니 유니콘 기업은 언감생심, 산야에 덕지덕지 세운 ‘관계자 외 출입엄금’ 팻말만 파해도 길짐승, 날짐승이 제각기 재주를 발휘하겠거늘. 게다가 4차 산업의 주일꾼들이 나처럼 공중을 날아 겨우 일군 성과를 정부가 한 듯 자랑하니 아예 만주나 시베리아로 날아가고 싶은 심정이외다. 선거법, 공수처법, 예산안에 매달려 반년을 허송하고 4차 산업 필수규약들은 며칠 전에야 뭉텅이로 처리하는 국회의 비루함에 혀를 끌끌 찼지만 어쩌겠소, 우리 동포들에게 혁신 경륜을 전수하는 게 도리라 무장공자(無腸公子)가 될 수밖에. (좌중 환호). 그러자 개구리가 덜 잠깬 눈에 온몸을 떨면서 폴짝폴짝 나온다.
◆개구리=우리더러 ‘우물 안 개구리’라 놀려대는데, 경륜도 짧은 청와대 고관들이 양비대담(攘臂大談)하는 꼴에 비하면 우리는 한참 위라. 우리는 못 본 건 모른다 하여 분수를 지키거늘, 소주성이 틀려도 경제가 나빠도 기다려라 좋아진다는 게 거의 삼년 세월이라 나 같은 미물이 어찌 헤아릴 수 있으리오. 청와대 86책사(策士)들은 한결같이 ‘우물 안 개구리’라, 30년 전 식견으로 이 세상을 경영하니 통령이 경제 활력을 되찾겠다 해도 믿음이 갈 리 만무외다. 우리는 주제가 미약한 것은 알고, 관가 마당이든 미나리 논이든 상관없이 우는데 비문(非文)이니 친문(親文)이니 다툼하는 권문세가보다는 낫지 않겠소. 천박한 지식으로 천하만사를 알은 체 하고, 이념이 다르다고 경륜가를 내치고, 황소 고집에 촛불 타령이니 철지난 창가(唱歌)와 같소이다. (손뼉소리 짝짝).
그 때 한쪽 구석에서 호랑이가 회장!을 소리치며 갈지(之)자 걸음으로 나온다. (다들 긴장). - 계속.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포스텍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