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사] 日서 창업한 신격호 회장에게 스타트업 정신 본다

중앙일보

입력 2020.01.19 23:01

수정 2020.01.19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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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종석 사회복지공동모금회 9대 회장

 

진정한 개척자 신격호 회장님을 기리며

예종석(67)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회장·한양대학교 경영대 명예교수 
 
                                             
신격호 회장님!  
최근 백수(99세 생신)를 맞으셨다는 기쁜 소식을 들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불쑥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보니 황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더 천수를 누리셔서 세상의 격변기를 경험하지 못한 후진들에게 가슴에 와 닿는 교훈을 더 주고 가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절절이 남습니다. 
 
세상살이가 까칠해지다 보니 대선배들이 어려운 시기에 고난을 극복하고 남긴 존경할만한 업적을 높이 사기는커녕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켜서 폄훼만 하는 세태가 아쉽습니다. 그러나 회장님께서 남기신 기업인으로서의 공적과 도전 정신은 미래 세대에게 모범이 되고도 남기에 저는 그 이야기를 몇 줄이라도 남기고자 합니다. 신격호 회장님께서는 일제강점기 그 엄혹했던 시절에 일본으로 가셔서 창업을 하셨습니다. 우리나라 대다수의 큰 기업인들이 8.15 광복 후 일본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 기업을 이어받아 사업을 일군 것과는 달리 회장님께서는 독립 전에 적국의 심장부로 뛰어들어 창업을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당시의 청년 신격호가 얼마나 훌륭한 독립 의식을 가졌는지를 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 논의는 오히려 회장님을 욕보이는 말장난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회장님께서는 그 때의 많은 지도자들과는 달리 과감하게 우리를 지배하던 일본으로 건너가서 창업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연유는 지금 따질 도리도, 필요도 없겠습니다만 그것이 남다른 선택이었고 나아가서 탁월한 성공을 가져왔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합니다.


신격호 회장님께서는 창업 초기, 갖은 실패와 어려움에 시달렸지만 당시의 신상품 ‘껌’으로 일본애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신회장님께서 젊은 시절, 문학에 심취해서 독일의 문호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샤롯데'에서 기업 이름을 따왔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그런 문학 청년의 감성을 잊게 해주기에 충분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입니다.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껌은 보잘 것 없는 품목이지만 신회장님의 사업 감각은 그 때부터 걸출한 면모를 보이면서 성장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껌에서 초콜릿으로 진출하면서 몸집을 키운 롯데는 그 후 모국, 대한민국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인 도약의 기회를 맞이하게 됩니다. 롯데호텔을 시작으로 롯데쇼핑, 롯데칠성음료, 롯데푸드, 롯데리아, 롯데카드, 롯데건설, 롯데케미칼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왔습니다. 제과업에서 시작해 유통업, 식품제조, 서비스업, 화학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키워왔습니다. 신회장님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재벌의 성장에는 많은 논란이 따를 수도 있겠지만 그 많은 위기를 겪고도 롯데그룹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5위 그룹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간의 노력과 희생을 웅변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과정을 기업가정신의 발로라고 지적하고 싶습니다.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어려운 여건에서 끝없는 도전 정신으로 새로운 영역에 진출한 모험심에 찬사를 보냅니다. 
 
신회장님의 창업 과정은 오늘날의 벤처나 스타트업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창업 환경과 부족한 자금조달 여건에서 일궈낸 빛나는 업적입니다. 한 세기 전에 태어나신 노 선배께서 이룩한 업적에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신회장님의 마지막 작품인 롯데월드타워는 건축 과정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처럼 지금은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 마크로 우뚝합니다.
 
부디 그 동안 이승에서의 불편한 일들은 잊으시고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시기 바랍니다. 
 
◇예종석 회장=아름다운재단 이사장, 한양대학교 경영대 학장, 나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