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언론은 해리 왕손과 메건 마클 왕손비가 지난 8일 고위 왕실 구성원(senior royal family)에서 물러나고 재정적으로 독립하겠다고 선언한 사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난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처럼 올해 메그시트(Megxit·Meghan과 Exit의 합성어로 메건의 왕실 독립 선언)가 영국 사회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는 의미다.
“마클 왕손비가 주도한 반란” 분석
여왕 “새로운 삶 지지” 독립 수용
왕손들 생활비 330억 세금서 충당
독립 땐 영국 세금에 기댈 수 없어
거주지 캐나다…총독 임명설 돌아
‘서식스 로열’ 상표권 등록 신청도
프랑스24 등 유럽 언론은 메그시트의 원인으로 마클에 대한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의 공격을 꼽았다. 아프리카계 혼혈 미국인인 마클은 해리 왕손과 결혼 당시 두 살 연상에 이혼 경력까지 있었다. 혼혈 신부를 영국 왕실에 들이는 일 자체가 드문 데다, 마클이 친아버지의 결혼식 참석 문제로 가족 불화까지 드러나며 시작부터 삐거덕거렸다.
영국 언론 지속적으로 마클 공격
영국 왕실의 금기를 한 번에 깨뜨린 마클에 대한 타블로이드 신문의 공격은 결혼 이후에도 계속됐다. 특히 마클이 아들 아치를 출산한 뒤, 관례를 깨고 로열 베이비의 공개를 거부하면서 공격에 기름을 부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빈과 고(故) 다이애나 왕세자빈도 출산 직후 병원 앞에서 국민에게 로열 베이비의 탄생을 알리며 아이를 공개했는데, 마클이 처음으로 이를 거부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세금으로 모든 특권을 누리면서 의무는 피하려 한다”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정적으로 지난해 10월 마클이 아버지 토머스 마클에게 보낸 편지 원문과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 등이 타블로이드 신문에 보도되면서 해리 왕손 부부는 사생활 침해 고통을 호소했다. 해리 왕손은 “나는 어머니(다이애나빈)를 잃었고 이제 내 아내가 동일한 강력한 힘에 희생양이 되는 것을 본다”며 해당 신문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이런 이유로 이들의 독립 선언은 예고된 수순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더욱이 해리 왕손은 왕위 계승 서열 6위로 왕위를 물려받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94세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건재해 72세에도 왕자 신분인 아버지 찰스 왕세자와 친형 윌리엄(38) 왕세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재정적 독립이다. 프랑스24는 “영국 국민이 독립을 선언한 이들 부부에게 세금이 나가는 것을 허락할 리 만무하다”고 전했다. 해리 왕손 부부는 지금까지 영국 공적 자금으로 생활해 왔다. BBC는 지난해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 부부가 2160만 파운드(약 330억원)를 썼다고 전했다. 부부는 거주지 프로그모어 코티지 개조 공사에만 약 40억원을 들였다고 한다.
이들이 북미 거주지로 캐나다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해리 왕손의 캐나다 총독 임명설도 제기되고 있다. 캐나다는 영국과 옛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주축이 된 영연방 회원국 중 하나다. 총독은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국가 중 현재 영국 연방에 남아 있는 국가들에서 영국 여왕을 대신하는 명예직이다. 캐나다 총독의 경우 내각 요청으로 영국 여왕이 임명하며 임기는 통상 5년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인 61%가 해리 왕손이 캐나다 총독을 맡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마클도 미국 법정 드라마 ‘슈트’ 촬영 시 몇 년간 캐나다 토론토에 거주한 경험이 있다. 두 사람은 지난 크리스마스 때도 캐나다에서 휴가를 보냈으며, 마클은 현재 아들 아치와 유모 등과 함께 캐나다에 머무르고 있다.
분노한 여왕 긴급회의 뒤 지지 밝혀
해리 왕손 부부가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에게 사전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하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이 분노했다고 영국 언론은 전했다. 여왕은 이들 부부의 폭탄선언을 논의하기 위해 13일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노퍽주(州) 샌드링엄 왕실 별장에서 열린 회의에는 여왕과 찰스 왕세자, 윌리엄 왕세손, 해리 왕손 등이 참석했다.
여왕은 회의 후 성명에서 “내 가족과 나는, 젊은 가족으로서 새로운 삶을 창조하려는 해리와 메건의 바람을 전적으로 지지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해리 왕손 부부의 독립 희망을 수용한 것이다. 여왕은 해리 왕손 부부를 왕실 공식 칭호인 서식스 공작과 서식스 공작부인이 아닌, “내 손자와 그의 가족” “해리와 메건”으로 불렀다. AP통신은 “실용적인 여왕이 군주제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논의를 중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