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의 인수, 전선이 바뀌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일깨워 주었던 배민이 독일계 자본에 인수됐다는 소식은 뜨거운 이슈였습니다. 하지만 인수 전에도 국내 자본만으로 이루어진 회사가 아니었다는 점을 상기시켜 보면 사실 아쉬움이 그리 크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번 빅딜의 상징성만큼은 무시할 수 없죠.
사람들은 숫자가 커지면 감각을 잃기 쉽습니다. 주머니 속 1000만원은 크지만 1조원은 감을 잘 못 잡는 것처럼 말이죠. 이번 매각에서 배민의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의 기업가치 평가액은 40억 달러(약 4조8000억원)입니다.
4조8000억원. 국내 코스닥 상장사 시가총액과 비교하면 두 번째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이마트 시총이 3조7000억원이라는 점입니다. 쿠팡도 아니고 배민이 이마트보다 시장가치가 높다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번 빅딜을 통해 우리는 배달, 물류, IT(정보기술) 전선이 새롭게 구축됐다는 걸 깨달아야 합니다. 배민과 요기요의 경쟁 구도는 한순간에 쿠팡과 배민으로 바뀌었습니다.
배송 최강자 '쿠팡' vs 배달 최강자 '배민'
쿠팡은 배민ㆍ마켓컬리를 경쟁 상대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마치 자신을 상대하려면 아마존ㆍ알리바바 정도는 돼야한다는 듯 보폭을 넓혀왔죠. 그래서인지 거리낌 없이 배민과 마켓컬리의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쿠팡의 2019년을 돌아보면 로켓프레시로 마켓컬리를, 쿠팡잇츠로 배민 시장에 진출해, 막대한 자금과 속도로 시장을 잠식해 나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배민은 인수되기 전 몇 개월 동안 그간 하지 않았던 정책, 이를테면 최소 주문 금액 폐지를 시행한다거나 쿠폰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배달 업계의 라이벌로 꼽혀온 요기요를 겨눈 마케팅이라기보다 쿠팡잇츠을 겨눈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내실을 키우며 보병처럼 멀리 보고 전진하던 배민은 빠른 기병을 보유한 쿠팡 앞에서는 힘겨운 전쟁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공격, 그것이 최고의 방어다.
B마트는 1시간 이내 배달이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물품 수(SKUㆍStock Keeping Unit)는 훨씬 적지만, 사람들이 자주 구매하는 웬만한 상품은 슈퍼에 다 있으니까요. 그리고 고객에겐 배송인지 배달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필요한 상품이 빠르게 오기만 하면 그만이죠.
지금은 B마트가 식품과 생필품 위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빠른 배송이 필요한 육아용품, 성인용품 등으로 상품군이 확대된다면 쿠팡과도 일부 경쟁이 가능할 것입니다. 이러한 온오프라인 통합 거점 전략은 중국의 허마셴셩 등에서 이미 검증된 모델이죠. 그런만큼 현재 1시간 이내 배송을 30분 이내로 줄일 수 있다면 B마트의 성공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쿠팡의 미래는?
이렇게 큰 규모의 회사가 매년 거의 2배씩 성장해 시장 지배력을 높이면서 적자를 적절히 통제하고 있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인 회사로 보이지 않을까요? 심지어 쿠팡보다 규모가 작은 배민도 4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으니 쿠팡의 몸값은 한층 더 올라갔을지도 모릅니다.
2020년 ‘메가 빅딜’이 있을까?
실제로 이미 선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쿠팡의 벤치마킹 대상인 아마존은 이미 홀푸드마켓을 인수(137억 달러 규모, 약 15조5000억원 )하며 오프라인으로 진출했습니다. 중국의 알리바바도 ‘새로운 유통’을 주장하며 허만센셩 등을 통해 온오프라인 통합을 확대해 나가고 있고요.
이러한 선례를 국내에 적용해보겠습니다. 아마도 이마트, 롯데마트, BGF, GS 등 대기업은 자신들의 본업인 유통 회사를 매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국내 유일의 사모펀드 소유 유통업체 홈플러스밖에 없죠.
온라인 최강자인 쿠팡과 오프라인 강자 홈플러스가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