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풀어달라” 2000명 넘어…두가지 부류의 신청자들

중앙일보

입력 2020.01.1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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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오후 2시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 다양한 연령대의 십여명이 ‘박근혜 대통령 형집행정지를 청원합니다’고 적힌 갈색 서류봉투를 들고 중앙지검 청사로 줄지어 들어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수감된 지 1000일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검찰에 접수된 박 전 대통령 형 집행정지 신청 건수는 2000건이 넘었다. 형집행정지는 '인도적으로 형의 집행을 계속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보여지는 사유가 있을 때 검사 지휘에 의해 수형 생활을 정지하는 것'이다.

9일 오후 2시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 집행정지를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들어가고 있다. 정진호 기자

 

3개월 2087명, 어떻게 모였나

형 집행정지 신청은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 2시마다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에 첫 접수가 이뤄진 이후 9일까지 2087명이 참여했다.  
 
대부분이 현장 접수다. 4개월여 동안 총 2000여명이 박 전 대통령 형 집행정지 신청을 위해 서초동을 오갔던 셈이다. 7일과 이날 중앙지검 청사 앞에서 만난 사람들은 “특정 정당이나 단체와는 관련 없다”며 “개개인이 자발적으로 힘을 보태기 위해 서초동에 나왔다”고 입을 모았다.
 
일종의 캠페인성 운동인 형 집행정지 신청은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과 지난 대선 자유한국당 중앙선거대책위 대변인을 지낸 정준길 변호사가 주도하는 모양새다. 류 전 위원장은 자신의 유튜브 방송과 주말 광화문 집회 등을 통해 형 집행정지 신청을 홍보한다.  


유튜브나 집회 현장에서 이 소식을 듣고 참여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서초역 1번 출구에서 모인다. 그 후 류 전 최고위원 등이 운영하는 서초역 인근 사무실에서 신청서를 작성한다고 한다. 이들은 이 사무실을 ‘임시정부’라고 불렀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이들의 유형을 둘로 나눠봤다.

7일 서울중앙지검에 접수된 형 집행정지 신청서. 정진호 기자

유형① "박근혜, 안타깝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변연우(56)씨는 “박 전 대통령 당선 전에는 ‘박사모’ 활동을 하는 등 오랜 기간 그를 지지해왔다”며 “정치 공작에 의해 박 전 대통령이 억울하게 희생됐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또 “주말에 광화문 집회에 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법적으로도 박 전 대통령을 위한 행동을 하고 싶어 형 집행정지 신청서를 냈다”고 덧붙였다. 서초동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모(71)씨는 “지나가다가 형 집행정지 신청을 하는 것을 보고 참여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어렸을 때 부모를 여윈 가여운 사람인데 설령 어떤 잘못을 했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말했다.
 

유형② "문재인 싫다, 촛불 죄책감" 

이처럼 전통적인 박 전 대통령 지지층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형 집행정지에 참여하는 사람도 다수다. 문 대통령의 대척점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인식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류 전 최고위원은 “최근엔 박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에 참가했던 사람들도 많이 온다”고 말했다.  
 
강남에서 사업을 한다고 자신을 소개한 김효정(53)씨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비리를 알게 된 이후 형 집행정지까지 참여했다”며 “전 정부 때 세월호 집회를 지원하고 촛불도 들었지만 최근 조 전 장관 사태를 보면서 이번 정부가 위선적이라고 느꼈다”고 했다. 김씨는 “조 전 장관 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정부가 원칙까지 어기는 모습을 보면서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수감된 박 전 대통령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졌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북구에 사는 박재용(32)씨는 “나는 상당히 젊은 편이지만 애초 박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마음이 있었다”며 “그래도 적극적으로 활동하진 않았는데 지금 정부 경제정책 등은 정말 좀 아니지 않냐. 그 분노 때문에 잠시 생업을 접고 서초동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범보수단체 주최로 열린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 우상조 기자

 

박 전 대통령 풀려날 가능성은

앞서 박 전 대통령의 변호인 유영하 변호사가 형 집행정지를 신청해 두 차례 심의가 열렸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4월과 9월 서울중앙지검은 “심의위원회 심의 결과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가 ‘형 집행으로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상태’로 보기 어렵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형 집행정지를 신청한다고 검찰이 심의위를 열지는 않는다"며 "형 집행정지의 법률적 요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실제 이뤄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