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여느 아이들처럼 까르르 웃다가 칭얼거리곤 하는 천상 세 살 여자아이였다. 치짱은 산책도 나갔고, 서툰 젓가락질로 점심도 함께했다. 연말 학예발표회 땐 친구들 사이에서 섞여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치짱이 어린이집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건 누구도 치짱을 특별한 아이로 보지 않기 때문인 듯했다. 보육교사는 15㎏ 무게의 치짱을 이리저리 안고 다니며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게끔 도왔고, 딸아이는 한 번도 치짱이 특이하다는 등의 얘기를 따로 한 적이 없었다. 치짱은 어린이집에서 자연스럽게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고, 아이들도 몸이 불편한 치짱이 있다는 걸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듯했다.
아이가 잘못될 경우 책임이 따르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어린이집 측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기초적인 사회생활에서부터 장벽을 느낀 아이와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니 너무도 안타까웠다.
기사에 달린 댓글은 더 참담했다. “그 아이를 돌보느라 다른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어떡하냐”, “남에게 피해주지 말고 집에서 데리고 있어라”라니. “내 아이만 중요하다”는 이기심이 읽혔다.
도쿄는 자치구마다 어린이집 입소 기준이 다르지만, 중도 이하의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는 오히려 입소를 우선시하는 곳도 있다. 모든 어린이집엔 간호사 1명이 상주하고 있다. 일반적인 어린이집의 보육교사 1인당 아동은 한국보다 많지만(3세: 20명, 4세: 30명), 장애 아동이 있는 경우엔 정부가 추가 보육교사의 인건비를 보조해줘 부담을 덜어준다.
치짱은 특별하지 않다. 오늘 아침에 지하철에서 만난 휠체어를 탄 사람일 수도, 횡단보도에서 마주친 걸음이 느린 사람일 수도 있다. 치짱이 나의 아이일 수도, 어쩌면 나일 수도 있다. 제도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자세가 먼저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