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 대해 김준규 전 검찰총장이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9일 페이스북에 “2020년 대한민국이 맞는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는가”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나라가) 50년을 뒤로 갔다. (집권세력이) 무서운 게 없어 보이며 국민을 우습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 안팎 ‘학살 인사’ 비판 이어져
김준규 전 총장 “국민을 우습게 봐”
“한직 발령은 수사 잘했다는 훈장”
한 현직 검사는 “‘말 안 들으면 죽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준 것”이라며 “정권을 향한 수사에 감히 손도 대지 말라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렇게 검사들에게 ‘좌천되는 걸 보라’고 말하는 인사는 처음 봤다. 티 내고 싶어 안달하는 것 같아 놀라웠다”고 말했다.
‘제2의 윤석열’을 양산할 수 있는 인사라는 비아냥도 나온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의 대선 여론조작 수사를 적극적으로 하다가 직무 배제 조처된 뒤 한동안 한직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이번 정부 들어 화려하게 복귀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한직으로 가는 게 오히려 ‘수사 잘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훈장처럼 돼버렸다. 검찰 간부들을 흔들어 평검사들이 말 잘 듣게 하려는 시도 같은데 오히려 반대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다음주에 단행될 차장·부장 등 중간간부 인사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련의 청와대 겨냥 수사 실무 책임자들까지 교체할 경우 수사 방해를 위한 인사라는 인상이 더욱 짙어질 수 있어서다. 이 경우 검사들의 반발 강도도 한층 높아질 수 있다.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검사들과 달리 윤 총장 등은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윤 총장은 물론이고 인사 대상자들도 사퇴 없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윤 총장은 검찰 인사가 단행된 직후인 8일 저녁 대검 간부들과 식사를 하면서 “모두 해야 할 일을 했다. 나도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테니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해달라”고 격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자리에는 한동훈 반부패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 등 좌천성 인사 대상자가 대부분 참석했다.
한 대검 관계자는 “윤 총장을 비롯해 아무도 사표 낼 사람이 없다. 청와대 수사를 지휘했던 간부들이 검찰을 떠나서 수사가 흔들리면 누가 이득을 보겠느냐”고 말했다.
이가영·김수민·박태인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