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에게 원내복귀 무대를 만들어 준 종로 보선 무대는 묘하게도 이명박(MB) 전 대통령이 만들어준 것이다.
노무현은 종로 당선돼서가 아니라
떠나면서 정치자본이 생겼다
역대 험지 출마도 현실은 냉혹
‘적재적소’ 보다 ‘적소적재’ 고민을
하지만 종로 승자 MB는 선거법 위반 사실이 드러나면서 2년 만에 의원직을 자진사퇴했고, 그 빈자리를 노무현이 치고 들어간 것이다. 결국 노무현은 종로에 깃발을 꽂았다.
그렇게 종로는 한때 두 전직 대통령의 요람이었다. 요즘 종로를 소개할 때 ‘노무현·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을 배출한 정치 1번지’라는 표현의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는 이유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낙연 vs 황교안. 지지율 1, 2위의 두 거물급 인사가 종로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두 사람의 맞대결이 실제로 성사되면 판이 무한대로 커질 게 분명하다.
선거에선 물론 이기는 게 선이고, 정의다. 종로가 상징성이 큰 지역임을 부정할 생각도 없다.
하지만 마치 종로가 무슨 대권 산실인 것처럼 과잉으로 의미부여를 하고 ‘치킨게임’ 하듯이 접근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정치 1번지라는 종로에서 당선되었기 때문에 훗날의 노무현이 있었을까. 오히려 정반대다. 그는 종로를 버렸기 때문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종로에서 당선되어서라기보다, 그 좋다는 종로를 버리고 부산으로 내려간 데서 ‘명분과 팬클럽’이라는 두둑한 정치적 자본이 생긴 것 아닌가.
MB는 종로 당선 이후 아예 정치인생의 위기를 맞았다. 장면·윤보선도 어디 종로 때문이겠는가.
종로에서 이기는 쪽이 총선 전체에서 이기는 거라면이야 치킨게임을 하든 더 위험한 룰렛게임을 하든 말리기 어렵다.
지난 2012년 총선 때다. 당시 야당인 민주통합당의 호남 중진들이 집단으로 험지 출마를 감행했다.
우선 지금의 정세균 총리후보자가 내리 3선을 했던 무주·진안·장수를 떠나 종로에 출전했다. 당시 종로는 박진 의원부터 한국당 계열이 연 세 번 당선했던 곳이니 험지라 해도 무방했다. 서울 강서을에는 전남 담양·곡성·구례에서 3선을 한 김효석이 뛰어들었다. 서울 강남을엔 전주의 정동영, 송파을엔 목포 천정배, 송파병에 전북 고창에서 4선을 한 정균환이 나섰다. 요즘 한국당에서 말하는 ‘수도권 험지 출마론’의 민주당 버전이었다. 결과는 아는 대로다. 강남라인 전멸에, 강서을도 패배했고, 종로의 정세균만 살아남았다.
바로 그 종로에서 이겼는데도 그해 총선은 민주당의 참패였다. 이걸 보면 종로는, 상징적 지역인지는 몰라도, 전체 판세엔 253분의 1일 뿐이다.
험지출마를 감행하면 대체로 폭망할 가능성이 크다. 왜? 험지에 출마했으니 그렇다.
인사에 ‘적재적소(適材適所·알맞은 인재를 알맞은 곳에)’보다는 ‘적소적재(適所適材·알맞은 곳에 알맞은 인재를)’라는 말이 있다. 공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당은 이미 폐기한 전략인 듯한데 요즘 야당은 험지, 험지 한다. 멀쩡한 동네를 험지라고 하면 듣는 유권자의 기분은 어떨지 생각도 않고 말이다.
총선이 100일도 남지 않았다. 여든 야든 조금은 어깨에 힘을 빼라고 권하고 싶다.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헛스윙이 나오는 게 어디 골프만일까.
강민석 정치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