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내 자랑만 하고 소개를 안 했구나. 나는 지난해 충북 청주시 오창읍에 위치한 한국생명공학연구원(생명연) 실험동물자원센터에서 태어난 실험 쥐야. 사실 난 태어날 때부터 당뇨를 앓고 있어. 의도적으로 아프게 태어난 셈이지. 바로 ‘질환모델’이야.
경자년 실험쥐가 말합니다
연구 위해 연간 350만 마리 희생
몸값 5만~10만원…60만원짜리도
2018년 국가전략연구자원 선정
동물실험 대체 기술 국내선 아직
그런데 어느 한 나라 혼자서 2만8000개 유전자를 하나씩 모두 편집할 수 없으니까, 각 나라가 뭉쳐 ‘국제마우스표현형분석컨소시엄(IMPC)’을 만들었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8500건이 등록됐다고 하네. 우리나라도 여기 참여하고 있어. (2013년 국가마우스표현형분석사업단이 발족했다. 현재 성제경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가 단장을 맡고 있다. 170여 건의 유전자 변형 쥐를 개발했고, 이 가운데 95건이 IMPC에 등록됐다.)
내 몸값은 5만~10만원 정도인데, 친구들 중에는 50만원 정도로 더 비싼 아이들도 있어. 당뇨나 신경계 질환에 걸린 쥐나 암에 잘 걸리는 쥐들이 연구자들에게 많이 ‘픽’(pick) 당한다고 해. 예를 들어 P53은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인데, 여기에 이상이 있는 친구들은 암에 빨리 걸린다고 해. 이런 친구들을 데려가서 약을 먹인 후 암이 발병하는지 안 하는지 독성 실험을 하는데, 일반 쥐들이 보통 18개월이 지나야 암이 생긴다고 하면 P53 KO 쥐들은 6개월 만에 생기기도 한대.
실험에 쓰이는 쥐 중에는 나 같은 ‘결함모델’ 말고도 건강한 ‘노령 쥐’들도 있어. 이들은 노화 연구에 쓰이는데, 30만~60만원으로 몸값이 좀 더 비싸. 연구자들이 와서 15개월, 24개월, 30개월 등 연구에 필요한 나이의 쥐를 찾아서 데리고 가는 식이야. 요즘 더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고 하네. 보통 생후 15개월 이상 쥐들을 노령 쥐라고 하는데, 생후 30개월 쥐는 사람 나이로 따지면 무려 80세에 해당하는 할머니·할아버지 쥐라고 할 수 있어.
나는 A4용지보다 작은 케이지에 비슷한 친구들 4~5명과 함께 지내고 있어. 이 케이지는 ‘무병원균’ 상태로 유지돼. 공기도 깨끗하게 걸러서 들어오고 물과 먹이도 고압증기멸균기(120℃로 작동)를 통과해야 들어올 수 있어. 나는 많이 먹지 않아서 하루 이틀에 한 번씩 물과 먹이 각각 25g 정도만 제공해주면 돼.
오해 좀 바로잡고 싶어. 나는 생각보다 무척 청결해. 쥐를 불결함의 상징으로 생각하는데 억울해. 실험실에서 깨끗하게 길러져서 그런지, 더러운 걸 참을 수 없어. 항상 혀로 몸을 핥아서 스스로 깨끗함을 유지하지. 또 사람들이 실험 쥐는 흰 쥐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검은 친구들도 많아. 희고 검은 쥐들이 큰 차이는 없지만, 검은 쥐에 대한 기존 실험 데이터가 많아서 검은 쥐들을 찾는 사람도 많다고 하네.
이제 국가에서도 나를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 같아. 2018년 쥐가 국가전략생명연구자원 중 하나로 선정됐어. 국가 차원에서 중요한 생명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한다는 뜻이지. 그런데 한편에서는, 나 같은 쥐들이 실험에 쓰이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고 있더라고. 그래서 요즘에는 동물 실험의 한계를 극복할 대체 시험법으로 인체의 생리적 특성을 정확히 모사한 ‘장기 칩’도 주목받고 있대. 혈관·폐·간 등 인체 장기를 구성하는 세포를 3차원으로 배양한 뒤 전자회로가 형성된 미세 유체 칩 위에 놓고 실제 인체와 유사한 생체환경을 만들어 약물 반응성을 시험하는 기술인데, 국내에서는 아직이야.
올해는 풍요의 상징인 ‘흰 쥐’의 해 경자년(庚子年)이라고 하네. 다들 풍성한 한 해 되기를 바랄게. 안녕!
※ 이 기사는 ‘실험 쥐’의 입장에서 1인칭으로 작성됐습니다.
오창=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