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설] 갈등 해결 첫걸음 뗀 한·일 정상회담…더 자주 만나야

중앙일보

입력 2019.12.2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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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어제 중국 청두(成都)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두 정상이 정식으로 양자회담을 한 건 지난해 9월 뉴욕에서의 회담 이후 15개월 만이다. 그만큼 한·일 갈등의 골이 깊었고 아직까지 현재진행형이라는 의미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때에는 호스트 격인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을 만나주지 않으며 한국에 대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다. 그 때에 비하면 우여곡절 끝에 두 정상의 회담이 이뤄진 것만으로도 진전이라 할 수 있다. 회담을 나흘 앞두고 일본이 1개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푸는 성의를 보인 것도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냉정히 평가할 때 이번 회담에서 거둔 성과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와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의 입장 차를 확인하는 데 그쳤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 관련 조치가 7월 1일 수준으로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며 일본의 결단을 촉구했으나 아베 총리는 “수출 당국 간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기본 입장을 반복했다.

징용 등 현안은 기존 입장 재확인
15개월 만의 회담 성사 자체가 의미

한·일 갈등의 씨앗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접점을 찾지 못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도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다만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의 필요성에 공감했다는 것은 문제 해결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동안 일본 정치권을 중심으로 문희상 국회의장의 해법을 반기는 분위기도 있으나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한국 정부나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이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어 ‘문희상 안’의 향방은 불투명하다. 결국은 양국 국민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토대로 외교 당국 간 또는 양국 정상의 위임을 받은 인사들 간의 협의를 통해 해결해 나가야 한다. 수출규제 문제나 조건부 연장 상태인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문제도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해결의 출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성과가 없거나 진전이 더디더라도 한·일 양국의 정상은 기회 있을 때마다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현안을 논의해야 한다. 두 정상 모두 어제 회담에서 ‘솔직한 대화’를 강조한 것은 바람직하다. 이번 회담은 제3국에서 열린 다자외교의 장을 빌린 것이지만 앞으로는 상호 방문 외교가 이뤄져야 한다. 내년에는 도쿄 올림픽과 한국이 개최 순번인 한·중·일 정상회의 등 자연스러운 상호 방문의 기회도 열려 있다. 문 대통령의 국빈 방일, 아베 총리의 국빈 방한이 성사될 때 비로소 양국 관계는 정상화의 궤도에 오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양국 정상이 지금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서야 한다. 또한 반일 감정과 혐한 감정을 각자의 국내정치에 이용함으로써 양국 관계, 나아가 국익을 해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지난 1년여 한·일 갈등을 반추하며 이제 해빙의 길로 나아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