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KT·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 등 대형 통신사가 타사의 인터넷망을 이용할 때 주고받던 접속료를 사실상 없애는 방식으로 제도를 바꾼다. 인터넷망은 여러 통신사가 깔아놓은 망이 서로 물려 있다. 한 통신사 망으로 접속해도 상대방과 연결되기 위해선 다른 통신사 망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통신사들은 자기 고객이 타사의 인터넷망을 이용하면서 발생시킨 트래픽 양에 따라 비용을 정산해왔다.
정부는 이번에 통신사끼리 주고받은 트래픽 양이 비슷할 경우 비용을 주고받지 않도록 제도를 개정한 것이다. 이렇게 하면 통신사들이 중소 콘텐트 제공업체(CP)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에 나설 것이란 게 정부의 기대다.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인터넷망 상호접속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개선방안에는 ▶트래픽 정산 구간을 1 대 1.6에서 1 대 1.8로 상향 ▶접속 요율 최대 30% 인하 ▶정산방식(용량‧트래픽) 선택 자율 ▶망 이용대가 추이 수집‧공개 등을 포함했다. 인터넷망 상호접속 기준이 처음 마련된 건 2016년이다. 이전에는 비슷한 규모의 통신사끼리는 상호접속이 발생해도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무정산 방식이었다. 그러다 2016년 상호접속고시를 마련해 타사 네트워크를 사용해 트래픽을 발생시키면 대가를 지불하게 했다. 이번에 정부가 내놓은 개선방안은 기존의 무정산제도와 현행 상호정산제도의 특징을 합친 형태다.
특히 정부는 이번에 통신사끼리 주고받는 트래픽의 비율이 1 대 1.8 이하이면 접속료를 주고받지 않도록 했다. 이는 통신사끼리 주고받는 접속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통신사들이 CP를 유치하는 데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KT가 특정 CP를 유치해 얻는 망 사용료가 1000만원인데, 이 CP가 트래픽을 많이 발생시켜, SK브로드밴드한테 줘야 할 접속료가 1100만원이면, KT로선 CP를 유치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KT가 특정 CP때문에 발생한 트래픽이 1000이고, SK브로드밴드로 보내는 트래픽이 1800이어도, SK브로드밴드에 접속료를 주지 않아도 되도록 했다. 따라서 KT는 물론 SK브로드밴드도 특정 CP를 유치하려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정을 둘러싸고 통신업계와 CP는 모두 "한쪽(상대방) 입장만 반영한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그동안 이통사는 네이버 같은 국내 CP와 넷플릭스나 구글 같은 해외 CP와 각각 다른 견해를 갖고 충돌해왔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CP는 망 이용료를 지불하는 반면, 유튜브·넷플릭스 등 대형 해외 CP는 망 이용료를 전혀 내지 않고 있다"면서 "상호접속고시를 통해 해외 CP들도 망 이용료를 납부해야 한다는 협상의 계기가 마련됐는데, 이번 개정안으로 다시 뒷걸음질 치게 됐다"고 우려했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해외 CP는 국내 인터넷 트래픽의 40% 이상을 차지한다.
CP "세계 시장 90%가 무정산 방식…미봉책에 불과"
정부는 또 이번에 세종텔레콤·드림라인 등의 중소 통신사가 KT 등 대형 통신사에게 내는 접속료를 낮추기로 했다. 현재 연간 13.4%인 접속료 인하율을 최대 30%로 낮춘다는 것이다. 이러면 CP들이 통신사에게 내는 망 사용료가 낮아져, CP들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을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정부가 개선방향을 마련한 점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무정산 구간 변경과 접속료 조정으로 그동안 쌓인 문제가 해소될지는 미지수"라면서 "정부와 업계의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