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화생명 이미숙(55) 상무는 인터뷰 첫머리에 이렇게 말했다. 내달 1일 자로 승진한 이 상무는 한화생명의 3번째 여성 임원이고, 최초의 ‘고졸(高卒)’ 여성임원이다. 1983년 만 19세에 사무직으로 입사해 12년 만에 영업관리자로 직종을 전환했고, 어려운 지점을 도맡아 이끌며 ‘구원투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분명 ‘뉴스’인데, 뉴스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한 이유는 뭘까.
힘이자 짐이었던 '엄마' 이름
한화생명 첫 고졸 여성임원 이미숙 상무 인터뷰
여성관리자, 특별하지만 평범한
여성관리자의 강점도 있었다. 영업을 나갔다가 돌아온 여성 보험설계사의 스타킹 올이 나간 걸 발견하면 몰래 스타킹을 새로 건네줬다. 실적압박보단 공감과 소통으로 동기를 부여하는 섬세함을 발휘했다.
승부욕에선 남성관리자들과 다른 점이 없었다. 오히려 더 악착같았다. 인터뷰 내내 “어려움을 극복할 힘은 오직 영업성과”, “내 좌우명은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대신 ‘사화만사성(社和萬事成)’”이라고 강조했다. 여성 후배들에겐 ‘여성으로서…’라는 말 대신 “증여‧상속 등 업계 관련 지식을 많이 쌓아라”고 조언했다. 사내 우수사원 시상식에서 9번이나 단상에 오른 동력이었다.
이 상무는 국내 3%지만, 70%이기도 하다. 지난해 4분기 중앙SUNDAY가 국내 30대 그룹의 반기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상근임원(8652명) 중 여성(280명) 비율은 3.2%에 불과했다. 같은 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347명의 여성관리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여성관리자패널조사에서 과장급 이상(1381명) 중 ‘실급 관리자‧최고경영자까지 승진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은 70.2%였다. 지난 10월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던 “500대 기업 등에 여성임원 50%를 의무할당하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배경이다.
이 상무는 “한화생명은 3년 연속 여성임원을 배출한 차별 없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곳도 2017년 이전까지 여성임원은 전무했다. 이 상무는 “최근에는 남성에게도 ‘아빠 휴가’라고 해서 1개월 정도 육아휴직을 주는데, 아직까진 편견이 있어서 쓰는 사람이 잘 없다. 나도 출산휴가를 법정휴가 반밖에 못 썼는데…”라고 했다. 이 상무를 제외한 다른 여성임원 2명은 경력직이다. 사내에서 육성된 여성임원은 이 상무가 유일하다.
“임원(任員)이란 이름만큼 회사에 책임을 다해 더 높은 직급까지 승진하겠다”는 게 이 상무의 목표다. 단, “여성이 임원 됐다고 뉴스가 되지 않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다”는 조건도 함께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