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이곳을 찾았다는 박준형(35ㆍ가명)씨는 “결혼 6년 차인데, 아이가 없어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먼저 난임 병원에 다녔지만, 자신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료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 이 병원을 어떻게 알게 됐느냐는 질문엔 “남자 동료들 중에도 알게 모르게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추천을 받았다”고 했다. 다만 다른 남성 환자들은 대부분 주저하는 표정을 지으며 인터뷰를 거절했다.
난임 남성 10년 새 2.5배 늘어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남성난임의 가장 큰 원인은 ‘정자 무력증’(44.3%)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희소정자증'(35.6%),'무정자증'(10.3%),'염색체 이상'(3.7%) 등도 원인이었다.
황나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연구위원은 "환경호르몬과 스트레스 때문에 남성 난임이 늘기도 했지만, 난임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 2017년 10월 이후 치료비가 원래보다 약 30% 수준으로 낮아져 남성들이 적극적으로 검사를 받으면서 난임 판정을 받은 남성 수도 늘었다"고 말했다.
난임은 모두가 고통…남성도 고립·무력감 호소
남성도 난임 치료과정 등에서 고립·무력감 등을 느꼈다고 토로한다. 회사원 김석현(37ㆍ가명)씨는 3년 전 난임 검사 때 어둑한 골방에 혼자 들어가 정액검사에 쓸 정자를 채취했다. 방에는 소파·TV·세면대가 있었고, 조명 아래 놓인 TV에선 ‘야동’이 계속 나왔다. 그는 그곳에서 혼자 ‘숙제’를 마쳤다. 검사 3일 전부터 ‘금욕’도 했다.
김씨는 ‘아내는 더 힘든 검사도 받는데 이런 건 감수하자’는 생각으로 검사에 임했다”며 "정자를 채취할 다른 방법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직장동료나 지인, 아내에게 검사과정을 자세히 말하지는 못했다"고 덧붙였다. 난임 병원 관계자는 “정액채취는 남성의 난임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이고 정확한 검사”라며 “그러나 낯선 곳에서 정액을 제출해야한다는 압박감 탓에 병원 방문 자체를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전자회사 연구직으로 일하던 이성현(39·가명)씨도 3년 전 같은 검사를 받았을 때를 떠올리며 "병원에 여자 간호사도 있었지만 이런 사정을 이해해줄 거라 믿고 신경을 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처럼 이런 걸 웃어넘기지 못하는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 나중에는 이런 방식의 검사도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난임 불안 떨치려 ‘관찰키트’ 사서 쓰기도
최안나 중앙난임·우울증상담센터장은 “난임의 경우 그 원인이 남성에게 있어도 치료는 대부분 여성이 받는 등 치료과정에서 남성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며 위축되고 이를 내색하지 못하면서 고립감을 크게 느낀다”고 말했다. 최 센터장은 “난임검사나 부부관계에서 남성은 자신을 임신을 위한 도구·수단으로 치부하는 등 무력감에 빠져 이후 부부관계를 잘 못 하는 '수행불안'을 겪기도 한다”며 “난임 극복을 위해선 부부관계를 해치지 않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호·김준영 기자 kim.tae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