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악기 회사 야마하가 개발한 디스클라비어(Disklavier)의 리모트 레슨 기술이다. 피아노의 건반 아랫쪽에 작은 장치가 하나 달려있다. 아날로그(모스크바의 피아노 연주)는 그쪽 장치에서 디지털로 바뀌어 서울로 전송되고, 서울의 장치는 신호를 다시 아날로그로 변환해 건반 밑의 모터를 움직인다. 모터는 건반과 페달을 동작시켜 현지와 똑같은 연주가 가능하게 한다.
이날 공연은 리모트 레슨 기술을 활용해 그네신 음대의 교수·학생 4명, 서울사이버대 학생 2명이 참여했다. 서울사이버대학교는 2015년 디스클라비어 5대를 구입해 원격 레슨에 활용하고 있다. 아마추어가 다수인 학생들에게 모스크바의 명문 음대 교수진 레슨을 가능하게 한다.
최근 피아노의 진화는 이처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결합이라는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소리의 음량ㆍ음색을 바꿀 수 있는 디지털 피아노, 기존에 저장돼 있는 플레이 리스트를 재생하는 자동 피아노의 시대를 넘어선다. 대신 특별한 개인이 연주한 방식을 그대로 저장하거나 동시에 재생한다.
166년 전통의 피아노 제작사 스타인웨이 앤 선스(스타인웨이) 또한 2015년 내놓은 ‘스피리오(Spirio)’를 발전시키고 있다. 스피리오는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를 때 1초에 800번씩 깊이를 기록한다. 건반 하나의 깊이는 1020 레벨로 나눠 피아니스트마다 다른 건반 터치를 구별한다. 페달은 초당 100번, 256 레벨이다. 스타인웨이 측은 이 방식이 “디지털 카메라가 고해상도로 발전한 것과 같은 원리”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기록된 연주를 건반·해머·현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 스피리오 피아노다.
스피리오가 현재까지 저장해놓은 곡은 3400곡, 아티스트는 1700명이다. 어플리케이션을 받으면 스피리오 피아노에서 재생할 수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글렌 굴드,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반 클라이번 등 생전 녹음을 분석해 스타일을 저장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랑랑, 유자 왕부터 신예 피아니스트는 스피리오용으로 새로운 연주를 한다. 어플리케이션에는 매달 100여곡씩 새로운 리스트가 생긴다. 한국 피아니스트 중엔 김선욱, 선우예권 등이 참여했다.
당연히 값은 높다. 스타인웨이의 경우 180cm짜리 그랜드 피아노(O-180)가 아날로그는 1억 4100만원, 스피리오는 1억 6500만원이다. 211cm짜리는 1억 7500만원, 1억 9600만원이다. 스타인웨이는 최근 녹음 기능을 추가하거나 외관에 다이아몬드를 붙이는 식의 업그레이드를 하면서 스피리오의 가격을 9억 3500만원(274cm)까지 높였다. 이같은 최고가 스피리오를 중국의 피아니스트 랑랑이 구매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야마하의 디스클라비어는 186cm가 4850만원(아날로그 2850만원), 227cm가 5900만원(3900만원)이다.
기술 개발은 계속된다. 야마하 디스클라비어는 현재 피아노 다섯 대를 동시에 똑같이 연주할 수 있다. 실제로 연주되는 한 대의 소리를 네 대가 복제할 수 있다. 시간차는 최대 0.5초다. 야마하는 연결할 수 있는 피아노 댓수를 늘리고 시차는 줄이는 기술을 개발한다. 피아노를 집에 들여놓고 인터넷을 연결하면 라디오처럼 알아서 스트리밍이 되며 건반이 울려 소리를 내는 ‘리모트 라이브’ 기능에 더해 TV 화면 속 연주자의 연주가 실시간으로 각 가정에서 연주되는 기술도 도입될 예정이다. 스타인웨이는 피아노에 연주를 녹음한 후 연주자가 스스로 편집하고 그걸 다시 재생하는 기능, 또 디스클라비어처럼 원격 레슨이 가능한 기능을 더할 계획이다. 이처럼 피아노의 발전은 신기함 또는 편리함을 넘어 실제성과 개인화의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