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첩보라니!”
반헌법적인 울산시장 선거 부정
수사기관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꼼수로 역사 흐름을 바꿀 수 없어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롯한 대검 수뇌부들은 숙의에 들어갔다.
먼저 검찰의 대응 방법이었다. “청와대의 문건 작성 배경과 이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는지를 수사할 수밖에 없다”는 데는 참모진들의 의견이 거의 일치했다. 이 정부 들어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된 직권남용죄 때문이었다.
윤 총장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참모들의 의견에 십분 동의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경찰이 공개적으로 밝힌 수사 착수 이유는 범죄 혐의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 사건은 재수사는 물론 특검까지 갈 가능성이 크다” “이왕 수사를 하려면 서울중앙지검에서 맡아서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후 황운하 전 울산경찰청장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고소 사건은 울산지검에서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부로 옮겨졌다.
경찰은 왜 청와대를 끌어들이는 ‘물귀신 작전’을 썼을까. 검찰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을 놓고 추론에 들어갔다.
첫째, 경찰이 아무 생각 없이 사실을 적어 보냈을 가능성이다. 하지만 모두 6차례에 걸친 검찰의 독촉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뭔가 찜찜한 구석은 있었던 것 같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별생각이 없었다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았다.
두 번째, 청와대를 내세우면 더 이상 검찰이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공산이다. 이 또한 검찰의 수사 의지를 고려할 때 가능성이 크지는 않아 보였다. 경찰도 윤 총장 체제의 검찰이 있는 그대로 수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세 번째, 경찰이 이간계(離間計)를 쓴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건으로 간극이 생긴 청와대와 검찰의 사이를 최대한 벌려놓아 수사권 조정 논의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이 그러하듯, 경찰도 정권보다는 조직 논리가 더 우선한 것으로 해석했다.
하지만 경찰의 반응은 다르다. 경찰 측은 “오히려 검찰이 경찰을 앞세워 수사 논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경찰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의 설명. “검찰이 올 하반기부터 집요하게 자료를 요구했다. 경찰의 입장에선 계속해 회신을 거부하면 수사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압박감까지 느꼈다.” 경찰은 수사기록서에 경찰청에서 받은 첩보 기록이 첨부돼 있고, 기록을 유심히 보면 청와대까지 이어진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두 기관의 논쟁은 국민의 입장에선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수사 착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청와대가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정권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윤 총장이나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겠지만 선거부정 행위는 반(反) 헌법적이다. 헌법주의자를 자처하는 윤 총장에겐 눈감고 지나갈 수 없는 중요한 범죄 의혹이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청와대의 개입 행태가 구체화되고 있다. 임종석 비서실장이 나서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출마를 권유하고, 민정실은 송 시장 경쟁자에게 자리를 보장하거나 약점으로 회유를 한 의심을 사고 있다. 송병기 울산부시장은 청와대에서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보이는 업무일지를 압수당했다.
조국 사건에 이어 연달아 유재수 감찰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이 정권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울산 사건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권을 무너뜨렸던 선거부정 의혹이라는 점에서 그 성격을 차별화할 수 있다. 변호사 수임료를 둘러싼 사소한 폭행이 시발점이 됐던 전 정부의 몰락이 데칼코마니처럼 서초동 법조타운을 떠돌고 있다.
“사실 앞에선 겸손해져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정권의 운명이 또 다시 검찰의 손에 쥐어지는 불행이 되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의를 위한 또 한번의 진통에 불과하다. 검찰과 대화를 하고, 수사의 문제점도 지적한다고 역사의 흐름까지 바꿀 수 있겠는가.
박재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