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아흔둘인 국민MC 송해가 지난달 발표한 새 노래 ‘내 고향 갈 때까지’의 일부다. 송씨는 지난해 7월 내놓은 앨범 ‘딴따라’에 이어 자신의 국내 최고령 음반 취입 기록을 다시 썼다. 노래를 들어봤다. ‘팔을 뻗으면 닿을 것 같고~.’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하다. 송씨는 나이를 잊은 듯 한 마디 한 마디 구성진 가락을 풀어놓는다. 가사는 평이하고 리듬도 화려하지 않지만 듣는 이를 아련한 그곳으로 이끌어간다.
92세 최고령 음반 신기록
북녘 고향에 가고픈 마음
차별·구분 없는 세상 꿈꿔
스산한 세밑 달래주는 듯
송해는 ‘전국노래자랑’과 동의어다. 그가 없는 ‘전국노래자랑’은 상상하기 어렵다. 88년 첫 마이크를 잡은 이후 지금까지 32년째 방방곡곡을 돌며 동네 명물들이 맘껏 끼를 발산하도록 했다. 코흘리개 꼬맹이부터 머리 성성한 할아버지까지, 학교 못 다닌 촌부부터 박사 학위 빛나는 교수까지 그 앞에선 누구나 무장해제가 됐다. 남녀·재산·직업·신분을 뛰어넘는 한바탕 무대가 차려졌다. 출연자가 누구든, 그들의 몸과 마음에 자신을 맞추는 송씨의 진행 솜씨 덕분이다.
반면 ‘가수’ 송해는 더 이상 도드라지지 못했다. 무엇보다 주린 배를 채워야 했다. 전역 후 55년 창공악극단에 들어가며 만능 엔터테이너 길을 걷었다. 유랑극단 생활을 하며 연기·사회·노래 세 가지를 병행했다. 단원 중 누구라도 문제가 생기면 그 자리를 채워야 했다. 지금도 옛 대중가요 수백 곡을 암기해 부르는, 노래방에 버금가는 레퍼토리를 갖췄지만 자기 이름으로 발표한 곡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오씨는 송해의 가장 큰 재산으로 사람을 꼽는다. 송해만한 사람 부자가 없을 것으로 본다. 행사장에서 만난 숱한 장삼이사(張三李四)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위·아래 따지지 않는 공평한 마음씨 덕분에 그에게는 안티 팬이 거의 없다. 심지어 구순 할배가 “귀엽다”고 한다. 이산·전쟁·가난 등을 두루 겪으며 터득한 지혜랄까. 분열과 대립이 들끓는 요즘, 차별과 구분을 무너뜨리는 그의 소통 방식이 빛나는 지점이다.
스산한 세밑이다. 아쉬움이 밀려든다. 헤어진 이들도 생각난다. 송해의 숨겨진 일화 하나. 그는 87년 뺑소니 사고로 금쪽같은 아들을 잃었다. 주변에서 가해자를 찾으라고 했지만 그는 추적을 포기했다. “트럭 운전수니 생활이 넉넉하지 않았겠지. 그 사람을 찾으면 그 사람 가족은 무슨 수로 생계를 유지하겠어”라고 했다. 그는 아픔을 딛고 노래자랑 마이크를 잡았다. 아들이 남긴 선물로 여겼다. 지금 어디선가 송씨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좋은 친구 좋은 이웃 내 곁에 있으니 괜찮아. 이만하면 괜찮아’(‘내 인생 딩동댕’) ‘강산이 좋다, 사람이 좋다. 가진 것 없어도 행복한 인생. 나는 나는 딴따라.’(‘딴따라’)
박정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