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봉준호 감독이 미국 매체 ‘벌처’와 인터뷰 때 했던 발언이다. 그 자신이 ‘로컬’로 규정한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오스카 트로피를 안을 가능성이 커졌다. 16일(현지시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발표한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9개 부문 예비후보 명단에서 ‘기생충’이 최우수 국제영화상과 주제가상 등 2개 부문에 오르면서다.
‘기생충’ 주제가상 등 예비후보 올라
미 잡지 “감독 본인이 록스타 반열”
영어 섞은 소통, 유머·달변에 호감
‘벌처’ 인터뷰 때 봉 감독의 발언은 “한국 영화가 지난 20년간 (세계) 영화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음에도 불구하고 한 번도 오스카에 노미네이트되지 않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이었다. 관련 트윗이 수천회 이상 리트윗 되면서 미국에서도 ‘사이다 발언’으로 떠올랐다.
‘기생충’은 제72회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필두로 지금까지 총 58개 영화제·시상식에 초청돼 36곳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흥행 성적도 좋아 지난 주말까지 북미 개봉 66일간 총 2035만 달러(약 238억원)를 벌어들였다. 역대 한국영화 최고 기록은 물론 현지 외국어영화 역대 흥행작 중 11위에 해당한다.
미국 현지에선 봉준호 감독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미국 잡지 ‘배니티 페어’가 “봉 감독 본인이 록스타급 반열에 있다”고 했을 정도다.
봉 감독의 발언이 미 현지에서 호감을 얻는 배경엔 비교적 원활한 영어 구사력도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질문을 바로 알아듣는 수준이며, 짧은 대답은 영어로 직접 하되 길고 까다로운 답변만 배석한 통역이 영어로 옮기는 식이다.
유머를 더한 겸손한 화법도 돋보인다. ‘데드라인’의 질문자가 “이 영화를 ‘광대 없는 희극, 악당 없는 비극’이라고 묘사했다”고 운을 떼자 봉 감독은 “한국에서 마케팅 팀이 써달라고 해서 쓴 것이긴 한데, 좀 느끼하죠(cheesy)?”라고 말해 웃음을 유도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히어로인지, 누가 빌런(악당)인지 애매한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짧은 인터뷰 때도 ‘꼭 해야 할 말’을 놓치지 않는다. 미 공영라디오(NPR) 인터뷰 땐 “(올해로) 한국 영화 역사가 100년이고 숱한 거장들이 있다. 추천작이 200개, 300개에 이르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작품 2개만 추천하겠다”면서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 ‘하녀’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언급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