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남 통영에서 만난 박항서(60)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은 “손흥민은 한국의 보물”이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22세 이하(U-22) 대표팀을 이끌고 14일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왔다. 전훈은 22일까지다. 통영은 K리그 감독 시절 자주 찾은 전지훈련지다. 또 고향인 경남 산청과 가깝다.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U-22팀과 경남 통영서 전지훈련
1년 버티기가 재계약까지 이어져
한국 감독 의향 묻자 “욕심 없다”
토트넘 손흥민(27) 관련 질문이 나왔고, 8일 프리미어리그 번리전에서 터뜨린 70m 드리블 ‘원더골’이 화제로 떠올랐다. 박 감독은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봤다. ‘저렇게도 골을 넣는구나’ 싶었다”며 “베트남에서 손흥민과 도안 반 하우(네덜란드 헤렌벤)을 비교하길래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베트남에서도 손흥민 얘기가 나오면 어깨를 편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세대인 손흥민 아버지(손웅정)가 부럽기도 하다. (아들이) 보물이지 않나. 언론도 손흥민을 보물처럼 아껴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베트남 공격수 응우옌 꽝하이(22·하노이)도 “베트남에서 프리미어리그를 많이 본다. 다들 손흥민을 좋아하고, 나도 많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박 감독에 대해선 “지난 2년간 감독님이 베트남 선수들 레벨을 높여 주셨다. 베트남에서 한국 이미지도 좋아졌고, 양국 관계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베트남뿐만 아니라, 한국도 박 감독에게 열광한다. 박 감독은 “베트남은 ‘헝그리 정신’이 강하다. 패배의식을 극복하려 하고 매사에 전투적으로 임한다. (한국) 기성세대 입장에서는 (베트남의 그런 모습에서) 몇십 년 전 한국이 이뤄냈던 경제발전이나 과거 한국 축구를 떠올리며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2017년 10월 베트남 축구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박 감독은 지난해 아시아 U-23 챔피언십 준우승, 아시안게임 4강, 스즈키컵 우승 등의 성과를 거뒀다. 올해는 아시안컵 8강과 동남아시안게임 우승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베트남은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에서도 G조 선두(3승2무)를 달린다.
박 감독은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 ‘1년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1년을 버티고 나니 ‘계약 기간을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2018년이 끝난 뒤에는 ‘2019년은 어떻게 보내나’ 했는데 나름 좋은 성과를 냈다”며 “하지만 지난 일들은 추억일 뿐이다. 그게 축구감독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축구 철학을 묻자 박항서 감독은 “깊은 축구 철학이 있었다면 3부 리그 팀(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을 맡다가 베트남에 갔겠는가”라고 받아넘겼다. 한국 대표팀을 맡고 싶은지 묻자 “한국에는 나보다 젊고 유능한 지도자가 많다. 내게 요청도 오지 않을 거고 욕심도 없다. 베트남과 재계약했으니 축구 인생을 베트남에서 마무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박항서 감독 고향 팀인 경남FC가 2부로 강등됐다. 박 감독은 “시도민 구단은 정치적인 관여가 많다. 나도 경험했다.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지만, 주변에서 역할을 다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2005년 경남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는 2007년 11월 구단 내 갈등에 휘말려 사표를 썼다.
대진표에 따르면 한국과 베트남이 8강에서 맞붙을 수도 있다. 박 감독은 “우리는 예선 통과가 목적”이라며 “한국은 당연히 조1위를 할 테니, 우리가 조 1위를 하면 안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박항서 감독 덕분에 동남아에 한국 축구지도자 열풍이 분다. 신태용 전 감독은 최근 인도네시아 대표팀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박 감독은 “(신태용은) 좋아하는 동생이다. 감독은 1년 이상 쉬면 현장 감각이 떨어진다. 빨리 복귀해야 한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통영=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