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쓰는 속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그래서 매우 단편적(斷片的)이다. ‘채무자 관점’에 치우쳤다. ‘~천 냥 빚을 안 갚는다’가 맞는 말일 수 있다. 빚이 탕감된 이후 채무자는 “갚았다”고 생각하는데 채권자는 “안 받고 끝냈다”고 여길 수 있다. 창 너머로 떠오르는 친구와 친척, 선·후배가 있지 않은가.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사업가 신혜선씨의 의혹 제기에 대응한 말을 보면 문득 빚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양 원장은 “(알아는 보겠다며 뭉개던) 그때 속으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았다면’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만냥을 기대했던 사람의 욕망을 채워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신씨는 우리들병원 대출 특혜 의혹에 양 원장 등 친노·친문 인사가 연루된 의혹을 주장하고 있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종교계(천주교) 지원을 담당했다는 신씨는 문 대통령에게도 “가까운 이가 연관성이 있다면 그 문제가 잘 돼가는지 묻는 게 양심 아닌가”라며 “괘씸하다”는 표현을 썼다. 복잡한 내막은 수사 중이니 섣불리 단언해선 안 된다. 다만, 채권자 신씨가 양 원장 등을 향해 “우물쭈물 피하는 건 비굴한 답”이라고 한 것을 보면 ‘말 한마디 빚 탕감’은 실패한 셈이다. 2년간 정치권을 떠나 있을 때 양 원장은 “(대선 때 도운 이들에게) 부채를 갚을 길이 없어 정치적 ‘파산신청’을 했다”고 이유를 댔는데, 복귀하면서 ‘나 홀로 빚잔치’라도 했는지 궁금하다.
김승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