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사교육업계에 따르면 대형학원의 '재수 선행반'의 문의·등록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각 대학의 올해(2020학년도) 정시모집의 원서 접수가 열흘 이상 남은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재수선행 반 등록률은 지난해보다 20% 정도 웃돌고 있다.
메가스터디 "작년보다 재수 선행반 마감 빨라"
대입 응시자 줄어도 SKY·의대·치대 경쟁은 치열
취업난 심해지자 "재수하더라도 명문대·인기학과"
전반적인 학생 감소나 교육과정 변화에 따른 수능 개편 때문에 재수생 규모가 줄 것으로 예상했던 학원가에선 이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달 14일 치른 수능 응시자는 총 48만4737명으로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내년 수능 응시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입 수능의 변화는 재수생 입장에선 부담이 될 요소가 적지 않다. 내년 수능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반영한 최초의 수능으로 출제 범위와 문제 유형에 변화가 생긴다. 문과수학(나형)에는 지수로그와 삼각함수가 추가되고, 이과수학(가형)에선 기하·벡터가 빠진다.
메가스터디의 남윤곤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학생 수 감소와 수능 변화로 재수생도 줄어들 것이란 예상이 많았는데, 벌써 재수학원에 대한 문의가 늘어나는 등 예상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수생은 줄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 대입도 수능 응시 인원은 전년에 비해 5만명 가까이 줄었지만, 수능에 응시한 재수생은 오히려 늘었다(지난해 13만 310명, 올해 13만 6972명).
전문가들은 전반적인 경쟁률 하락과 별개로 명문대, 인기학과 진학을 위한 경쟁은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설명했다. 강명규 스터디 홀릭 대표는 "언뜻 보면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지만, 실제 분위기는 정반대"라면서 "학부모·수험생은 '인서울' 대학',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의·치·약학 계열로 목표를 좁혀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 취업이 한층 어려워지고, 대기업·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 지속하자, 상당수 학생·학부모가 취업 등에 유리한 명문대나 인기학과 진학을 위해 기꺼이 재수를 선택한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수능을 친 고3 아들을 보낼 재수 기숙학원을 찾고 있다는 정모(50·서울 은평구)씨는 "수능 가채점 결과를 보니 '인서울' 진학이 힘들 것 같다는 판단이 들자 바로 재수를 결심했다"며 "물론 재수시키는 데 들어갈 비용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재수를 통해 취업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 모(47·서울 노원구) 씨는 "큰아들이 서울 소재 대학의 역사학과를 4.0점이 넘는 학점으로 졸업했지만, 아직도취업을 못 했다"면서 "내년에 고3이 되는 둘째는 재수를 시켜서라도 꼭 의대나 약대에 보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구본창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국장은 "대학 학벌 차이가 일자리 기회,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사회적 불평등이 근본적 원인"이라며 "사회 전체적으로 기회의 문이 점점 좁아지자, 교육 분야에서는 입시 과열과 사교육 팽창 등 부작용이 생겨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사립대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재수생 증가, 입시 과열 문제 등을 단순히 교육 정책으로만 해결하기는 어렵다"면서 "입시 부담을 줄이기 위해선 대입 제도만을 손보려 할 게 아니라 청년 일자리 확대나 '선진학 후 취업', 임금 격차 해소 등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