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오전 9시에 일정 추가해줘”
이 한마디면 시리나 빅스비 같은 음성인식 AI 비서가 달력에 일정을 추가해주고, 시간에 맞춰 알려주기까지 하는 세상에 아직도 ‘종이 다이어리’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줄임말), 수집 등 이유는 제각각이다. 학창시절에 ‘다이어리 좀 꾸며 본’ 3040 세대뿐 아니라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해 IT 기술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세대)까지, 연령도 다양하다.
#브랜드 애호가 형
시중에 파는 다이어리와 비교했을 때 저렴한 가격은 아니지만, 스타벅스 다이어리는 매년 품귀 현상을 겪고 있다. 다이어리는 다양한 색상과 디자인으로 출시되는데 일부는 조기 품절되기도 한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올해도 플래너 부족으로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매년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받는다는 김설희(31)씨는 “어차피 스타벅스를 자주 이용하기도 하고, 오랫동안 이 증정 행사에 참여해 이젠 다이어리를 받는 게 하나의 의식처럼 굳어졌다”며 “다이어리를 받으면 연말이 실감 나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이용자들 역시 대체로 “다이어리를 끝까지 다 쓰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으로 쓰는 느낌이 좋아서 매년 다이어리를 받는다”고 답변했다.
#‘팬심(心)’ 형
펭수 다이어리를 구매한 사람들은 이를 ‘굿즈’(연예인, 캐릭터 등이 들어가 있는 물건으로 팬들이 주로 구입)의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다이어리에 내용을 적기 위해 산다기보다는, 펭수가 그려진 다이어리를 구매하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펭수 다이어리를 구매했다고 올린 이용자들에게 물어보니 “펭수 다이어리는 실용적이지 않더라도 구매할 것” “펭수를 가까이서 자주 보고 싶어서 팬심에 구매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과거 MBC 예능 ‘무한도전’의 인기가 굿즈 열풍으로 이어졌던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멤버들의 사진이 들어간 무한도전 달력은 당시 한 해에 50만 부 이상 판매됐다. 달력 역시 해마다 인쇄 물량이 줄고 찾는 사람도 적어진 아날로그 시대의 물품이지만, 프로그램의 팬들은 이를 기꺼이 유료로 구매했다. 한 인쇄업체 관계자는 "인쇄 업계 매출이 전반적으로 내리막이지만 굿즈나 개인적 물품에 대한 주문은 오히려 늘었다"고 밝혔다.
권유진 기자 kwen.y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