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70㎞ 던지겠다는 일본 투수…인간 한계는 어디

중앙일보

입력 2019.12.11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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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바 롯데 신인 투수 사사키 로키는 시속 170㎞를 던지는 게 목표다. [AP=연합뉴스]

일본 야구가 들썩인다. 오타니 쇼헤이(25·LA 에인절스) 이후 등장한 또 다른 강속구 투수 때문이다. 지난달 30일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바 롯데에 입단한 ‘괴물’ 사사키 로키(18)가 그 주인공이다.
 
키 1m90㎝·체중 86㎏인 사사키는 4월 청소년 대표팀 훈련 도중 시속 163㎞ 직구를 던졌다. 그는 입단식에서 “내 장점은 빠른 직구다. 직구만큼은 어떤 투수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며 “시속 170㎞짜리 공을 던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오타니 선배의 기록을 추월하겠다”고 호언했다. 구단은 그에게 등 번호 ‘17’이 박힌 유니폼을 선물했다. 17번은 오타니가 LA 에인절스에서 쓰는 등 번호다.

한·미·일 프로야구의 광속구 바람
18세 사사키 163㎞에 일본 열광
채프먼은 비공인 170.6㎞가 최고
“팔꿈치 인대 못 버텨 툭하면 부상
시속 180㎞면 공 던지다 다칠 것”

오타니는 일본 야구선수 중 가장 빠른 공을 던졌다. 2016년 10월 퍼시픽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5차전 소프트뱅크 호크스전에 나와 시속 165㎞를 찍었다. 당시 오타니는 “시속 170㎞ 공을 던지겠다”고 했지만,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시속 170㎞ 강속구는 ‘투수의 꿈’이다. 0.3초 만에 홈플레이트에 도달하는 속도다. 타자의 일반적인 반응 속도(0.4초)보다 빠르다. 알면서도 치기 어렵다. 투수에겐 절대무기다. 하지만 쉽게 도달할 수 없는 기록으로 여겨왔다. 투수의 한계 구속을 꾸준히 연구해 온 미국 스포츠의학연구소 글렌 플레이직 박사는 2010년 “인간이 던질 수 있는 최고 속도는 시속 161㎞ 전후”라고 주장했다. 실험 결과, 그보다 더 빠른 공을 던지려면 팔꿈치 내측 측부 인대가 견디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MLB 뉴욕 양키스 아롤디스 채프먼. [AFP=연합뉴스]

좌완 투수 아롤디스 채프먼(31·뉴욕 양키스)이 신시내티 레즈에서 뛰던 2011년, 시속 170.6㎞(106마일)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스피드건이 아니어서 공인받지 못했다. 채프먼은 2010년, 16년에도 시속 169㎞(105.1마일)를 찍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선수로 통한다. 최근 MLB에는 시속 160㎞대의 강속구 투수가 늘었다. 데이터와 첨단 장치를 이용한 훈련 시스템이 정착되면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시속 160㎞대 공을 던진 선수가 있었다. 모두 외국인 선수다. 2011년부터 세 시즌 LG 트윈스에서 뛴 레다메즈 리즈(36·도미니카공화국)가 공식 경기 최고 구속 기록(시속 162㎞) 보유자다. 한화 이글스에서 2016년 잠시 뛴 파비오 카스티요(30·도미니카공화국)도 시속 160.4㎞짜리 공을 던졌다.
 
국내 투수는 오타니, 사사키와 달리, 시속 160㎞가 넘는 공을 던지지는 못했다. 2003년 당시 SK 와이번스 우완 투수 엄정욱(38)의 시속 158㎞가 최고 기록이다. 2007년 당시 롯데 자이언츠 최대성(34)이 같은 구속을 던졌다. 올해 키움 히어로즈 불펜 투수 조상우(25)가 시속 157.2㎞로 개인 최고 구속을 경신했다. 그는 한국 선수 최초로 시속 160㎞ 돌파에 도전한다.
 

한·미·일 프로야구 최고 구속

강속구는 금단의 열매 같다. 플레이직 박사는 “구속과 부상 위험의 상관관계는 강력하다. 구속이 빨라질수록 부상 위험도 커진다”며 “팔꿈치 인대와 힘줄이 시속 160.9㎞(100마일) 이상 구속을 감당할 수 없다. 많은 투수가 한계 구속에 도달하고 있다. 팔꿈치를 수술받는 투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오타니는 MLB 한 시즌 만에 팔꿈치를 수술했다. 올해는 투수 대신 지명타자로만 뛰었다. 투·타 겸업 부작용이라는 분석인데, 강속구도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됐다. 오타니는 MLB에서도 시속 160㎞ 이상 직구를 종종 던졌다.
 
플레이직 박사는 “달리기 또는 수영 선수는 과학적인 훈련과 영양 공급을 통해 몸의 근육을 강화해 속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나 팔은 다르다. 구속은 팔꿈치 관절을 고정하는 인대와 힘줄 등에 의존한다. 이 부분은 근육과 달리 훈련이나 보충제, 어떤 요법으로도 강해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과학책 『퍼펙션 포인트, 인간의 한계가 만들어내는 최고의 기록』(2012년)에는 빠른 구속에 대해 이렇게 적혀 있다. “투수는 ‘마지막 투구가 될지언정 시속 185㎞ 공을 던질 수 있지 않겠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투구하는 도중에 부상이 발생할 것이다. 공을 바닥에 던져버리지만 않아도 행운이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