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대 1 ‘노스펙’ 전형 뚫고 ‘이재명의 눈과 귀’ 된 청년 스펙은?

중앙일보

입력 2019.12.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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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5일 모경종 경기도 청년비서관이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인터뷰하며 포부를 밝히고 있다. 최은경기자

 
지난 8월 경기도에서 화제가 된 채용 공고가 있었다. 지방별정직 5급 상당의 경기도지사 청년비서관을 뽑는 공고였다. 화제가 된 것은 학력·경력을 전혀 보지 않는 ‘노 스펙(No Specification)’ 전형이라서다. 이름·연락처 등 기본정보와 A4 용지 3장 이내의 정책제안서만 제출하면 만 18세 이상 누구나 지원할 수 있었다. 당시 경기도는 도지사 비서관을 추천 선발이 아닌 공개 채용하는 것은 처음이며 모두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달여 뒤 이 전형의 주인공이 가려졌다. 10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공개 채용 면접을 통과해 선발된 모경종 경기도 청년비서관이다. 모 비서관이 출근한 지 한 달이 넘었지만 그의 나이·학력·경력 등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1월 25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사무실에서 모 비서관을 만나 경기도 최초 청년비서관으로서 포부를 물었다. 인터뷰하며 그의 스펙에 관한 단서를 몇 가지 알 수 있었다. 모 비서관은 자신 역시 오랜 기간 취업을 준비했으며 청년이라 아팠던 기억이 있다고 했다. 

모경종 경기도 청년비서관 인터뷰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도지사의 청년정책 철학을 이해하고 청년들과 소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주로 지역 청년정책위원회를 만나는데 청년활동가, 기성세대인 지역 사업가 등 구성원이 다양하다. 경기도가 추진하는 청년 정책을 파악하고 개선점을 고민하며 내년 정책을 구상하는 일도 한다. 쉽게 말해 청년 정책에 있어서 도지사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다. 
 
옆에서 보니 ‘이재명표’ 청년 정책의 핵심이 뭔가. 
늘 청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정책의 핵심은 공정한 기회다. 모두에게 고루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것. 지금은 이 철학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일부 청년들조차 기본소득을 왜 주냐고 반대한다. 하지만 경차든, 스포츠카든 에어백이 필요하지 않나. 있는 청년, 없는 청년 모두에게 제공되는 보편적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경기도 청년 정책에 대한 평가는. 
밖에서 봤을 때 이런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 한 것은 대부분 추진 중이거나 계획 중이더라. 정책 발굴만큼 홍보와 접근성을 높이는 게 중요하다. 또 아동·노년층이 자연적으로 형성된 복지 사각지대라면 청년층은 일자리 부족 등으로 사회가 만들어낸 사각지대다. 이런 패러다임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11월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경기도시공사 다산신도시사업단에서 열린 ‘남양주시 청년창업 및 취업지원 정책현안 간담회’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청]

 
정책제안서에 뭘 썼나.
우선 홍보와 피드백, 맞춤 정책 검색을 위한 청년 정책 플랫폼 혹은 포털을 만들자고 했다. 여기 담을 내용은 주거와 일자리 정보다. 기업과 청년의 목소리를 아우를 수 있는 일자리 쿼터제와 도가 매입해 청년들에게 임대하는 기숙사형 주거제도를 제안했다. 또 청년들에게 활력을 줄 수 있게 지역 화폐를 활용한 문화 바우처 혜택 제도를 구상했다. 비슷한 내용이 있었겠지만 카테고리를 잘 나눠 뽑힌 것 같다. 
 
이번 채용 지원 동기는. 
비밀이지만(웃음) 1989년생으로 나도 청년이다. 취업 준비하며 설움도 겪었고 월세를 깎으려고 이곳저곳 전전하며 벌레 나오는 방에도 살아봤다. 독서실 총무로 일할 때 원장이 이틀만 나오라고 했다. 주휴수당을 주기 싫어 ‘쪼개기 채용’을 하는 거다. 최저시급만 주는 것은 언젠가부터 당연한 게 됐다. 청년들이 덜 상처받고 성공할 수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공고가 났다. 정책 관련 일을 준비하던 터라 자신감을 갖고 지원했다. 노 스펙 방식도 흥미로웠다. 청년들이 불신이 많다. 솔직히 경기도에서 내정한 사람이 있지 않을까 강하게 의심했다. 아무 연고나 연줄도 없는 내가 뽑히면 이 채용은 진짜라고 했는데 정말 뽑혔다. 제대로 활용한다면 열정과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채용 방식인 것 같다. 
 
그에게 정책 관련해 어떤 일을 준비했는지 묻자 “아직 내 학력이나 경력을 직원들도 모른다”며 망설이다 4년 동안 행정고시를 공부했다고 말했다. ‘인 서울 4년제’ 대학에서 어문계열을 전공했다는 그는 노 스펙 전형으로 뽑힌 만큼 편견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스펙을 공개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의 임기는 도지사 임기와 같다. 
 
앞으로 포부는.
뽑히고 나서 신혼인 친구가 현 청년 정책의 아쉬운 점을 토로하더라. 나 역시 수원에 와서도 집값이 너무 비싸 15군데 발품을 팔았다. 성공이라는 열망은 누구나 있지 않나. 그 가교 구실을 하는 정책을 만들고 싶다. 
 
한편 이번 채용에 이어 경기도 18개 공공기관 역시 2019년 하반기 채용에서 학력이나 출신 지역을 고려하지 않는 블라인드 채용 방식을 택해 53.7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수원=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