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정오 홍콩섬 센트럴의 ‘런치 위드 유’ 시위 현장에서는 홍콩에서 30년을 살았다는 금발의 프랭크를 만났다. 그는 홍콩 정부가 베이징의 ‘꼭두각시(puppet regime)’라고 했다. 단 폭력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16일 경찰의 봉쇄 전날 홍콩 이공대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한장을 유심히 살폈다. 제목은 “평화·이성·비폭력(和理非)의 특징과 변화”였다. 온건하지만 융통성을 갖춘 ‘평화 플러스(和理非+)’와 폭력을 불사하는 ‘용무파(用武派)’로 진화한 현실을 전했다. 시민 55.7%가 시위대의 폭력을 이해한다는 여론 조사 결과도 덧붙였다. 이 비율은 11·24 구의회 선거에서 확인됐다. 범민주파 56.62%, 친중파 41.27%의 최종 득표율과 비슷했다.
이처럼 700만 홍콩 시민의 약 60%는 베이징의 ‘폭도’ 주장보다 “폭도는 없다. 폭정만 있을 뿐”이란 시위대 구호를 지지한다. 왜 베이징과 홍콩 정부는 과반수 시민을 『수호전』의 민란(民亂)격인 ‘핍상양산(逼上梁山)’으로 몰았을까?
해법도 달랐다. 공산당 중앙은 애국자를 주체로 한 ‘자치’, 공직자와 청소년에 대한 중국화 교육,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해법으로 내놨다. 홍콩 시민은 파업·휴교·철시로 대답했다.
피터와 프랭크는 체육관 간선제로 뽑힌 대표자가 홍콩보다 베이징을 대변하는 현실에 반발했다. ‘왜 정부가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범죄인 송환법을 추진하며 캐리람 행정부는 베이징과 시위대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홍콩의 위기는 중국식 거버넌스에 뿌리를 둔다. 통치의 정당성을 직접선거의 민주주의가 아닌 통치 능력으로 증명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의 한계다. 일당독재는 효율성과 취약성이 공존한다.
자유민주국가의 집권자는 선거로 위임받은 권력을 임기 동안 행사할 뿐이다. 포퓰리즘에 취약하지만, 정통성 위기는 없다. 2019년 홍콩 시민 60%가 민란을 꿈꾸는 이유다.
신경진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