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는 이 약국의 단골 환자였다. 서로 잘 아는 처지여서 그런지, 이씨는 김 약사의 권고를 받아들였다. 집으로 가지 않고 정신건강센터로 향했고 거기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을 받았다. 이씨는 극단적 선택을 머리에서 지웠다. 정신건강센터 직원은 “이씨가 치과 진료를 받으러 나들이할 때 센터에 들러 상담을 받고 간다”고 전했다.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32)
파주시 예방 1위 도시에 선정
번개탄엔 “도움 요청” 스티커
동네가게 주인도 위험자 살펴
충북 보은군은 농약안전보관함 보급
파주에서는 약국뿐만 아니라 의원, 동네 가게, 이장 등이 나서 극단적 선택 줄이기에 총력전을 펼친다. 위험신호를 감지하면 전문기관에 연결한다. 김재섭 약사는 “환자들을 잘 알다 보니 행동이 평소와 조금만 달라도 금세 알 수 있다”며 “파주시에서 마음건강약국으로 지정받은 후 더 유심히 환자를 살피고 있다”고 말했다. 42개 마음건강약국에서 올해 4명의 고위험 환자를 감지해 정신건강센터로 연계했다. 병·의원 24곳도 2년째 같은 역할을 한다. 여기서도 4명의 극단적 선택을 막았다.
번개탄 판매업소(85곳)는 번개탄을 전용 보관함에 둬야 한다. 최대한 눈에 잘 안 띄는 곳에 둔다. 번개탄에 ‘일산화탄소 중독은 뇌 손상 등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 혼자 고민하지 말고 연락 달라’고 적힌 스티커를 붙인다. 윤상준 파주시 정신건강복지센터 자살예방팀장은 “스티커가 한 번 더 생각하고 도움을 요청하게끔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수퍼마켓 주인 서상봉(70)씨는 “술·테이프와 번개탄을 함께 찾으면 이유를 묻는다. 특히 외지 사람이면 관심 있게 살핀다”고 말했다. 2017년 7월 한 수퍼마켓에 농약병을 든 50대 남성이 들어와서 “죽겠다”고 했다. 주인이 농약병을 뺏어 집으로 돌려보냈고 이를 주민센터에 알렸다. 파주시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지원을 받아 농약안전보관함 606개를 농가에 보급했다. 평소에 열쇠로 잠궈둔다. 홧김에 농약병에 쉽게 손이 가는 걸 걸러준다. 파주시 장파리 정찬준 이장은 “농약보관함을 신발장으로 쓰는 사람이 많았는데 교육을 많이 한 덕분에 지금은 그렇지 않다. 농약보관함이 자살 충동을 순간적으로 막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파주시의 지난해 자살률(인구 10만명당)은 22.7명으로 2013년(33.4명)보다 30% 줄었다. 가장 높았던 2003년(37.2명)보다 40% 가까이 줄었다.
지자체 한 곳당 예방예산 9420만원뿐
충북 진천군은 ‘쉼 바우처 카드’를 활용한다. 자살 고위험 주민에게 20만원 상당의 바우처(이용권)를 지급해 정신과 진료나 영화관, 목욕탕에 쓸 수 있게 한다. 2015년 이후 120가구에 지원했다. 우울 증세가 심한 30~50대 직장인 61명에 전국 최초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화상상담을 할 수 있게 지원한다. 충북 보은군은 농약 음독(28.6%)이 다른 지역보다 높다는 분석을 토대로 올해 1478개의 농약안전보관함을 보급했다. 다른 데보다 훨씬 많다.
이번 조사에서 지난해 자살률이 증가한 사실을 확인했다. 2015~2017년 평균보다 1.18% 늘었다. 89곳(38.9%)은 줄었다. 지난해 기초단체 한 곳당 평균 자살예방예산은 9420만원이다. 전체 예산의 0.016%에 불과하다. 안실련 이윤호 안전정책본부장은 “재난 수준의 자살률 감소를 위해 정부·지자체가 예산·인력·사업 등을 자살 예방에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