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서소문 포럼] 우리도 핵 카드를 검토할 때가 됐다

중앙일보

입력 2019.11.25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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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

청와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했다. 북한의 군사 도발이 거세지며 한·일 군사정보 교류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고 한·미·일 안보 협력이 중요한 상황을 고려하면 다행한 일이다. 지소미아 파기는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한·미 동맹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일 관계 악화와 북한 비핵화 협상 등을 보면 문재인 정부에 전략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독일 통일의 주역 비스마르크 같은 외교 천재가 있었다면 한국이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그는 19세기 후반 크고 작은 연방 국가들의 연합체에 불과했던 독일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주변국을 자기편으로 만드는 뛰어난 외교술로 국제 정세를 주도했다.
 
문재인 정부에 비스마르크 같은 사람이 있다면 한국이 맞닥뜨린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 그는 먼저 큰 그림을 그린 뒤 국익을 최대한 챙길 수 있는 카드를 준비해 국면을 주도했을 것이다. 한국의 가장 큰 위협은 북핵이다. 핵무기는 한 발이면 수십만 명의 사상자를 낼 수 있는 절대무기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국가는 첨단 재래식 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핵보유국과 경쟁할 수 없다.
 
한국으로선 북핵을 폐기하는 게 최선이다. 문 대통령이 온갖 정성을 다해 대화와 타협으로 비핵화에 나서는 게 이해가 된다. 문제는 북한이 핵 폐기 의사가 없다는 데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을 위협한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이나 막말에도 말 한마디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끌려다닌다. 이런 상태가 이어지며 한국은 미국이나 중국·일본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 채 국제 사회의 외톨이가 되고 있다.


비핵화의 실패 이후 북핵을 상대하려면 한국도 핵무기가 필요하다. 한국 홀로 핵무기를 개발하려 하면 핵보유국인 미국과 중국·러시아가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한국으로선 일본을 끌어들여야 한다. 일본도 북핵 위협에 노출돼 있다. 두 나라 모두 동맹을 돈으로 환산하는 미국의 핵우산을 언제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다.
 
한·일이 “북핵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핵무기가 필요하다. 북핵이 폐기되면 우리도 핵을 폐기할 것이다”라는 카드로 미국을 이해시켜야 한다. 미국이 한·일의 핵 개발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미국의 핵우산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수준의 핵공유협정으로 발전시켜 달라고 할 수 있다. 중국·러시아에는 핵확산을 바라지 않는다면 최대한의 압박으로 북핵 폐기를 이끌라고 압력을 넣을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일본은 한국과 이해가 일치한다. 갈수록 거세지는 미국이나 중국의 일방주의 외교 행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일본과의 협력은 중요하다. 이런 일본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는커녕 과거사에 얽매여 더욱 멀어지는 건 자해 행위다.
 
한국은 핵 카드로 비핵화 논의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바둑에서 선수(先手)가 국면을 이끌듯이 전략가들은 외교 관계에서 주도권을 중시한다. 그래야 한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비핵화 논의를 이끌 수 있다. 지금처럼 북한의 말과 행동에 일희일비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국의 운명은 오리무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도 전면 재조정해야 한다. 한국이 핵무기 개발 태세를 갖추려면 원전 기술을 더욱 고도화해야 한다. 탈원전 실험은 한국 현실과 맞지 않으며 원전 생태계를 파괴하는 부작용만 낳고 있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쩔쩔맨 지도자가 아니라 한반도 평화 설계자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큰 그림을 보고 국면을 주도할 외교안보정책을 세우고 실행해야 한다.
 
정재홍 콘텐트제작에디터·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