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42조원 상당의 알짜 사업을 잃을 위기에 놓였다. 소비자도 불리하다. 신탁을 활용해 손쉽게 투자했던 주가연계증권(ELS) 투자가 막힐 수 있어서다. 앞으로 은행 고객이 ELS에 투자하려면 비용을 더 내고 펀드(ELF)로 가입하거나 거래 창구를 증권사로 옮겨야 한다.
신탁도 사모펀드처럼 고난도 상품 규제
시중은행, ELS 편입한 신탁 주로 판매해
신탁 통해 ELS 투자했던 소비자에도 영향
은행들 "공모 신탁은 판매는 허용해 달라"
은성수 "신탁 공모와 사모 구분 어려워"
신탁이란
문제는 금융당국이 신탁이 특정 개인에게 판매된다는 점에서 ‘사모’의 범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당국은 고난도 사모펀드를 차단한 것처럼 원금 손실이 20~30% 이상인 투자 위험이 높은 고난도 신탁도 은행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할 계획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사모펀드 판매를 규제하면 신탁을 이용한 우회 판매가 나타날 수 있어 함께 규제항목에 넣었다”며 “이번 정책의 취지는 원금 손실 가능성이 큰 상품은 (은행에서의) 판매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 왜 반발하나
ELS는 개별 종목의 주가나 주가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이다. 이를 펀드로 팔면 ELF고 신탁으로 거래하면 주가연계신탁(ELT)이 된다. ELS는 상품 구조상 원금 손실 가능성이 20~30%를 웃돌기 때문에 ELS를 편입한 신탁(ELT) 역시 고난도 상품에 포함될 수 있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은행의 ELT 판매액은 42조8000억원(잔액 기준, 파생결합증권신탁(DLT) 포함) 에 이른다. 이번에 문제가 된 사모 DLF(4조3000억원)의 10배 이상 규모다. 은행이 DLF 사태로 인해 42조원 시장을 잃을 위기에 놓인 셈이다.
소비자 영향은
김인응 우리은행 영업본부장은 “그동안 은행에서 곧바로 가입할 수 있었던 ELT와 달리 ELF는 운용사를 한 단계 더 거쳐 운용되므로 소비자는 운용사 보수 등의 비용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은행 대신 증권사로 거래 창구를 옮겨도 되지만 판매 채널이 은행에 비해 적기 때문에 증권사 등이 많지 않은 지역의 고객들은 번거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 관계자 역시 “저금리 상황에서 ‘예금금리+알파(α)’의 수익을 기대하는 고객들이 많아지며 은행은 대안책으로 ELS를 신탁 상품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며 “2009년 판매를 시작한 뒤 10년간 원금손실이 난적이 없는데 고난도 상품으로 묶여 판매를 제한하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해결책은
금융위도 검토해본다는 입장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20일 자영업자 금융지원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은행권에서 신탁을 공모와 사모로 분리할 수 있다면 오히려 (공모 판매를) 장려하고 싶다”며 “우리가 강조한 것은 파생상품을 내재한 채 사모로 판매되는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탁은 공모와 사모로 구분하는 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은행과 금융당국의 입장 차이를 얼마나 좁히느냐가 DLF 최종 방안의 방향을 좌우할 변수라는 말이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