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윤준호 의원(더불어민주당·해운대 을)은 11월 6일 페이스북에 김현미 장관과 찍은 사진을 올렸다. 두 사람이 ‘해운대구 조정지역 해제 요청’ 문건을 들고 있는 장면이다. 이날 국토부는 해운대구를 조정지역에서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윤 의원은 김 장관에게 여러 번 해제 건의를 했고, 약속을 받았으며, 그 증거로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이날은 마침 국토부가 분양가 상한제 지역을 콕 찍어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정말 집값 안정만 생각했다면 부산도 풀지 말았어야 한다. 그래야 메시지가 분명하다. 해운대는 2년 전 사상 최고 집값을 기록했다. 규제를 풀기는 이르다는 예상이 많았다. 아니나 다를까. 눌렸던 집값이 스프링 튀듯 뛰었고, 서울에서도 투기꾼이 몰려들었다. 규제 해제 후 첫 분양한 센텀 KCC스위첸은 67.7대1의 1순위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최고 경쟁률이다.
정책은 시장과 교감할 때 성공
논란 큰 정책일수록 솔선수범
정치공학적 규제·완화 삼가야
부산뿐 아니다. 국토부는 김현미 장관 지역구인 고양시 일산서구도 해제했다. 고양시의 삼송택지지구, 원흥·지축·항동 공공주택지구, 덕은·킨텍스 1단계 도시개발지구, 고양관광문화단지는 조정대상지역으로 남았다. 다른 곳은 두고 장관 지역구만 푼 것이다. 일산서구에선 지난 5월 3기 신도시 발표 후 김현미 낙선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상한제 지역에서 빠진 흑석동과 과천은 또 어땠나. 흑석동은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현직 때 투자한 지역이다. 시세 차익이 10억원은 난다고 한다. 과천은 김수현 전 실장이 사는 곳이다.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김현미 장관이 김의겸 전 대변인과 김수현 전 정책실장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는 글이 올라왔다.
의혹이 커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규제 지정과 해제는 국토부 장관 포함 25인의 주거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사실상 장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다. 민간 의원 명단은 비공개다. 회의록도 비공개다. 안건은 당일날 준다. 검토할 시간도 없다. 게다가 해제 기준도 없다. 지정할 때는 집값 상승률 등 몇 가지 요건이 있지만, 해제는 그야말로 ‘엿장수 마음대로’다. 김대중 정권 말 투기지역이 처음 등장했는데, 강남은 노무현 정부가 끝날 때까지 계속됐지만, 대구·부산 지역은 선거철마다 수차례 지정과 해제를 반복했다.
시장은 아마추어 이념가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정책이 잘 작동하려면 시장과 교감해야 한다. 내로남불이나 정치공학 대신 솔선수범해야 한다. 논란이 큰 정책일수록 더 그렇다. 집값 안정이 진짜 목표라면 당장 흑석동·과천을 분양가 상한제에 포함하고, 일산서구와 부산을 다시 규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꿈쩍도 하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부터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데, 뭘 고치겠나.
이 정부 들어 강남 집값 잡겠다며 17번의 대책을 내놨는데, 강남 고가 아파트는 되레 15억원이 올랐다. 노무현 정부 때보다도 서울 집값이 많이 뛰는 바람에 분양가 상한제를 전격 실시한 게 불과 10여일 전이다. 그 후에도 강남 4구 전·월세·집값이 계속 오르자 국세청·금융위원회를 동원해 집중 자금출처 조사에 나서고 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부동산 안정됐다. 자신 있다”고 했다. 시장과 대통령, 둘 중 한쪽은 다른 나라 얘기를 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