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는 지난 1년 새 비정규직이 86만명 늘어났는데도 입맛에 맞는 통계만 들이대며 고용의 질이 좋아졌다고 자랑한다. 주요국 가운데 나 홀로 경기침체에 빠져들어 급기야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고 경제의 기둥인 30·40세대 일자리가 24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인데도 말이다. 이래서는 다른 목소리를 내는 ‘악마의 대변자’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다. 혹시라도 집단사고에 빠져 부적절한 방향으로 가는 건 아닌지 검증하는 역할이 필요하지만, 현 정권에서 그런 사람은 설 자리가 없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장은 대통령)이 거의 마지막 악마의 대변자였던 것 같다. 그는 지난해 5월 소득주도 성장의 문제점을 비판한 뒤 그 직을 떠났다.
정권에 ‘악마의 대변자’가 실종
경륜 있는 전문가들 충언 쏟아져
문 대통령 원로들 의견 경청해야
사공일은 최장수 경제수석과 재무부 장관 두 번을 역임했고, 김인호 역시 공정거래위원장과 경제수석을 거쳤다. 둘은 한국무역협회장도 거쳐 정책과 현장에 두루 밝다. 이들이 최근 상소문에 가까운 책을 펴냈다. 사공일은 『한국경제의 지속번영을 위한 우리의 선택』을 펴냈다. 어떤 내용인지는 지난주 본지 ‘직격인터뷰’에서도 심층적으로 소개했다.
그가 주장하는 요지는 이렇다. “소득주도 성장을 고집하면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려면 지금이라도 경륜 있는 각계 전문가의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성장 잠재력이 너무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다. 그러니 현 정부의 시대적 사명은 제4차 산업혁명에 걸맞은 혁신성장을 통해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기업가들의 ‘즉흥적 낙관’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 반대라면서 부디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고 호소했다.
김인호는 1967년 경제기획원 사무관부터 2017년 한국무역협회장까지 지난 50년간의 회고록 『명과 암 50년 한국경제와 함께』를 펴냈다. 지난주 북 콘서트에 갔는데 깜짝 놀랐다. 한덕수 전 총리를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책이 1000쪽에 달해 주말 내내 읽었다. 김인호는 전두환 정권에서 물가정책국장을 했다. 정부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봤던 사람이다. 그랬던 그는 “(지나보니) 경제는 수요·공급이란 시장원리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철저한 시장주의자가 됐다. 그는 “지금 국가주의로 무장한 사람들에 의해 나라가 존망의 갈림길에 빠졌다”면서 “시장으로 귀환하는 정책 없이는 한국경제에 미래가 없다”고 일갈했다. 사공일 역시 “시장 기능 무시하는 경제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문 정권은 부디 이들 경륜가의 호소에 귀 기울이기 바란다. 보여주기식 ‘국민과의 대화’가 따로 필요 없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