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주식거래가 정지되기 한 달 전까지도 이 회사의 전환사채(CB)를 담보로 대출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2년간 녹원씨엔아이의 CB를 담보로 180억원(11건)가량의 대출을 해준 곳은 상상인저축은행이다.
더 심각한 경우도 있다. ‘관리종목 사유가 발생했다’는 경영 공시가 뜬 뒤에도 담보대출 심사를 통과시킨 저축은행이다. 유니온저축은행은 3월 15일 디스플레이 부품업체인 유테크 CB를 담보로 경영컨설팅업체에 50억원을 빌려줬다. 이미 11일 전 공시 영향으로 유테크 주가는 반 토막 난 뒤였다.
19일 김용태 자유한국당 의원실에서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이처럼 CB를 담보로 한 무분별한 저축은행 대출이 늘고 있다. 지난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상상인ㆍ상상인플러스ㆍ유니온저축은행 3곳은 CB담보 대출(신주인수권부사채(BW) 포함)이 전체 여신의 30%가량(잔액 기준)을 차지했다.
신규 CB담보 대출액 기준으로는 상상인저축은행이 5229억원(179건)으로 가장 많이 취급했다. 자산 기준 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이 같은 기간 20억원 미만의 CB담보대출 단 한 건을 실행한 것과 비교된다.
유진, 지난해 말 CB담보 대출 중단 "리스크 높아"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저축은행도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위주로 영업하고 있다”면서 “CB담보 대출은 높은 이자를 챙길 수 있지만 워낙 위험성이 높고 전문 분야이기 때문에 담보물을 평가하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2017년부터 CB담보로 대출 영역을 넓혔던 유진저축은행은 지난해 말부터 관련 영업을 중단했다. 유진저축은행 고위 관계자는 “새 수익원을 찾기 위해 해봤는데 저축은행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CB는 주식시장과 연결돼 발행사가 부실해지면 (발행사가) 상장폐지 될 수 있다”며 “더욱이 최근 회계감사가 강화되면서 상장폐지 우려가 더 높아졌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담보를 잡아두긴 힘들다고 판단했다”고 덧붙였다.
저축은행 4곳 담보물 중 38곳 거래정지
자료에 따르면 상상인ㆍ상상인플러스ㆍ유니온ㆍ유진저축은행이 최근 2년간(2018년 1월~2019년 9월 말) 대출을 취급하며 담보로 받은 CB발행사 중 38곳은 주식시장에서 관리종목으로 지정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저축은행도 (거래정지나 상장폐지 등에 대비해) 만기일 전에 발행 채권을 상환하는 조기상환청구권을 옵션 조항에 넣지만 100% 자금 회수를 못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주가 띄우기’ 작전세력에 악용될 수도
이에 대해 상상인그룹 노동조합의 김호열 지부장은 “담보물이 확실했기 때문에 (차주가) 유령회사인지 중요하지 않았고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이같은 무분별한 대출이 주가의 시세조종을 일삼는 작전 세력에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CB 발행 소식은 주가에 호재로 작용한다. 발행사의 채권 신용도를 인정받은 데다 신규 사업에 투자할 자금이 들어온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흔히 작전 세력이 규모가 작은 코스닥 기업과 짜고 유령회사를 세운 뒤 CB를 발행해 주가를 띄우는 방식으로 활용하는데, 대부분 개인 소액투자자(개미)가 투자했다가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저축은행 CB담보대출 규제 고민
금감원 관계자는 “서민과 영세자영업자를 위한 자금을 지원한다는 저축은행의 본연의 역할에 비춰볼 때도 CB와 BW 담보대출로의 과도한 쏠림현상은 올바르지 않다”면서 “CB 담보 대출 제한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저축은행 역시 1금융권과 마찬가지로 차주의 재무상태와 상환능력, 자금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해야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부실로 이어지면 기관경고 등 행정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강경훈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근 재무건전성이 취약한 일부 코스닥 업체도 CB 발행에 성공하는 것을 보면 주가를 띄우려는 작전세력에 활용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금융당국은 더 많은 투자자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전반적인 실태조사와 함께 관련 규제를 마련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염지현 ㆍ강광우ㆍ정용환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