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신용평가 ‘씬 파일러(thin filer)’에 대안될까
제윤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나이스평가정보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기준 금융 이력 부족자(최근 2년 내 신용카드 사용실적이 없고 3년 내 대출 보유 경험이 없는 자)는 1289만7711명으로 전체 신용등급 산정 대상자 4638만7433명의 27.8%다. 2014년(1227만6623명) 이후 62만여 명이 늘었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씬 파일러에 대한 신용평가제도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이에 은행들은 금융권 거래실적이 없을 경우 비금융 정보로 개인의 신용을 평가하는 대안신용평가 모델 개발을 추진했다.
금융 이력 부족자 4년간 62만 명 늘어
은행들은 최근 비금융데이터를 활용한 신용평가 모델을 구축하고 대출심사에 적용하고 있다. 신한은행과 NH농협은행은 금융 이력이 부족해 대출심사에서 탈락한 고객들을 재심사하는 데 통신3사 정보를 반영한 신용평가시스템을 활용한다. 통신사 이용 정보만으로 대출이 가능한 상품도 나왔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11일 소득정보나 직장 정보 없이도 통신사 정보만으로 최대 300만원까지 대출을 받는 ‘우리 비상금 대출’을 출시했다. 소득정보나 직장 정보 없이 휴대전화 요금납부 내역 등을 바탕으로 통신사 신용등급을 통해 신용대출을 해준다. 이 상품은 지난 11월 6일 기준으로 최저금리 연 4.34%, 대출 잔액은 173억원이다. 최근에는 SK텔레콤도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저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개발 중이다. 대출 대상자는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는 영세 소상공인이다.
신한카드는 자영업자를 상대로 개인 신용등급이 아닌 매출 규모와 성장 가능성 등을 반영한 신용등급 평가모형을 개발해 적용할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대출받을 때 개인신용등급을 1~10등급으로 나눠 여신 심사했지만 앞으로는 개인사업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신용평가모형과 가맹점 매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매출 추정 모델로 평가하게 된다. 비금융거래 데이터로 신용점수도 올리는 서비스도 나왔다. 한국카카오은행은 고객의 건강보험납부 내역이나 세금납부 내역 등을 평가에 반영해 신용평가 점수를 재산정하는 ‘신용점수 올리기’는 서비스를 내놨다.
대안신용평가 방식은 데이터베이스(DB)와 동영상·사진 등의 데이터에 대한 클라우드 기반의 빅데이터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나왔다. 해외에서는 비금융정보를 활용한 신용점수 산출 신용평가회사가 이미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파이코(FICO)와 렌도(Lenddo)를 들 수 있다. 파이코(FICO)는 통신료, 지불결제 이력 등을 활용한 신용위험 측정모형을 적용해 금융정보가 부족한 개인들의 신용점수를 산출한다. 렌도(Lenddo)는 SNS 친구나 포스팅 등 260억개 데이터를 머신러닝(학습)으로 분석해 일종의 평판 점수인 렌도 스코어를 매긴 후, 이를 통해 고객의 금융 신용도를 평가한다.
납세·사회보험료 정보도 비금융정보로 활용돼야
납세·사회보험료 정보 등 비금융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11월 국회에 발의된 신용정보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신용정보 개정안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없도록 비식별화된 개인신용정보(가명정보)를 상업적 목적의 통계작성이나 산업적 연구를 목적으로 정보 주체의 동의없이 제공 또는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국회에 1년째 계류된 신용정보법 개정안은 최근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안건으로 상정됐지만 논의 끝에 보류됐다. 여야는 법 개정 자체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보완사항이 있다며 11월 열리는 법안소위에서 추가로 논의하기로 했다. 개정안에 대해 과세당국, 시민단체 등에서 반대하고 있어 통과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민단체에서는 데이터 활용 규제 완화가 되면 개인정보 악용 가능성이 높다며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백정현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 교육국장은 “빅데이터가 개인정보와 결합하며 범죄자들의 수익원이 되고 있다”며 “개인정보 활용이 활성화되면 보이스피싱 문제가 지금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희 기자 kim.sung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