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후폭풍은 엄청났다. ‘레바논 쇼크’라는 수식어가 한국 축구대표팀을 따라다녔다. 대한축구협회는 한 달 뒤 조광래 당시 대표팀 감독(65·대구FC 대표이사)을 경질했다. 그는 레바논 원정 전까지도 ‘만화 축구’라는 말과 함께 주목받던 감독이었다.
전술 무용지물 레바논 원정 해법
8년 전 엉망인 환경서 충격 패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 재현 조짐
선수간 소통 잘하고 흥분 말아야
경기장 안팎 환경도 심각했다. 경기장 앞에는 미사일과 탱크, 장갑차가 배치됐고, 총을 든 군인이 경기장 안팎을 에워쌌다. 경기 내내 관중석 한쪽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경 소리(기도문 외는 소리의 일종) 같은 게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뛰는 이와 보는 이 모두의 집중력을 시험하는 듯했다. 축구장이라고 써놓은 종교 시설 또는 군사 시설 같은 경기장이었다.
14일 오후 10시(한국시각) 한국과 레바논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도 8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에서 열릴 모양이다. 선수단에 앞서 베이루트 현지에 건너가 경기장 상태를 체크한 축구협회 측은 ‘최악’으로 판정했다. 파울루 벤투(50·포르투갈) 대표팀 감독이 경기 하루 전날 으레 하는 그라운드 적응 훈련마저 포기했을 정도다.
대표팀은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캠프에서 경기 전날(13일) 마지막 훈련까지 마친 뒤 전세기 편으로 베이루트로 들어간다. 경기 직후 곧바로 아부다비 캠프에 복귀할 예정이다. 지난달 평양 원정 때와 마찬가지로 ‘열악한 환경의 원정 경기는 일정을 최소화한다’는 대표팀 운용 원칙에 따른 것이다.
8년 전 ‘재미’를 봤던 레바논이 그때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놓고 한국을 기다리는 낌새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쉽지 않은 승부가 예상된다. 예상 못 할 변수투성이인 상황이라면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 경험도, 52계단이나 높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한국 39위, 레바논 91위)도 의미 없다. 미리 준비한 전술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 만큼, 선수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끊임없이 대화하고 격려하며 흥분과 스트레스를 가라앉혀야 한다. 믿음직한 리더로 성장한 주장 손흥민(27·토트넘)을 중심으로 대표팀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모을 때다.
송지훈 축구팀장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