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발장은 가난과 굶주림 탓에 빵 한 조각을 훔쳤다가 19년간 옥살이했다. 그러면서 사회에 대한 원망과 증오심을 키우게 된다. 장발장은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장편 소설 『레미제라블』의 주인공으로 '생계형 범죄자'의 전형으로 불린다.
전주지검이 '현대판 장발장'을 막기 위한 실험에 나섰다. 생계가 어려워 범죄를 저지른 청년 등에게 고용노동부의 취업 교육인 '취업성공패키지'를 받는 조건으로 재판에 넘기지 않는 제도를 도입했다. 취업성공패키지는 저소득 구직자 취업을 지원하기 위해 2009년 고용노동부가 만든 제도다. 이 프로그램을 조건부 기소유예와 연계한 건 전국 지방검찰청 가운데 전주지검이 처음이다.
전주지검, 전국 최초로 제도 도입
고용노동부 전주지청과 MOU
만 18~34세 생계형 범죄자 등 대상
동종 전과 없고 자활 의지 보여야
취업난 심각한 전북 지역도 이익
檢 "악용하면 재기소…가중 처벌"
취업성공패키지 프로그램을 알고 있던 권 지검장이 전주지검 간부들에게 청년층에게 기소유예 혜택을 주면서 지역 사회에도 이익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는지 공부해 보라고 권하면서 구체적인 방안이 만들어졌다. 전주지검 측은 "단순히 실험만 하면 1년 뒤 수뇌부가 바뀌면 흐지부지될 것 같아 아예 제도화하자는 취지에서 고용노동부와 MOU를 맺었다"고 설명했다.
전주지검이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한 배경에는 생계 문제로 인한 재범 우려와 전북 지역의 고질적인 청년 취업난이 자리한다. 검찰은 생계형 범죄자는 처벌 이후에도 경제적 이유로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전북 지역 청년 취업률은 약 31%로 최근 10년 연속 전국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다는 게 검찰 분석이다.
검찰은 초범이거나 동종 전과가 없고, 조사 과정에서 반성과 자활 의지를 보인 청년 위주로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사안에 따라 중·장년층에도 적용한다. 취업성공패키지는 1단계 상담·진단(개인 특성별 분야 결정)→2단계 직업 훈련(최장 6개월)→3단계 취업 알선 순으로 진행된다.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수하는 참여자에게는 참여수당(25만원)과 훈련수당(월 40만원), 취업성공수당(150만원) 등 최대 715만원, 기업에는 연간 720만원의 보조금이 지원된다.
전주지검에 따르면 지난 9월 말부터 지난달 말까지 최근 한 달간 '취업성공패키지 이수 조건부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사람은 모두 7명이다. 자기 명의의 은행 체크카드를 빌려준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입건된 A씨(25)와 B씨(31), 친구에게 본인 휴대전화와 은행 카드를 건네 인터넷 중고품 사기 판매에 쓰이게 한 혐의(사기방조)로 검찰 수사를 받은 C군(19) 등이다. 이들은 취업 준비생이나 신용 불량자로 보이스피싱이나 인터넷 사기 등 불법 차명 거래에 악용될 줄 알면서도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소액의 대가에도 통장·카드를 빌려줬다. 하지만 모두 동종 전과는 없었다.
전주지검 안팎에서는 "국민 세금을 들여 취업 교육을 하는데 대상자가 형사 처벌을 면하기 위해 검찰을 속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검찰은 제도를 악용해 세금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주기적으로 프로그램 참여자의 수업 태도나 상태 등을 점검하는 한편 교육 과정에서 부정이 발견되거나 합리적 이유 없이 중단할 경우 해당 참여자를 재기소해 더 무겁게 처벌할 방침이다.
전주지검 최용훈 차장검사는 "나름대로 신중한 조회와 검토·판단을 거치다 보니 아직까지 대상이 많은 편은 아니다"며 "조건부 기소유예이므로 대상자들이 혜택만 받는 게 아니라 수개월간 취업 교육을 이수해야 하는 부담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상자와 지역 사회 모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면 대검 등에 이 제도의 확산을 건의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주=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n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