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 기념일인 9일(현지 시간) “장벽이 무너지기 몇달 전만 해도 누구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베를린 장벽 기념관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메르켈 총리는 동독에서 서독으로 가려다 숨지거나 투옥된 이들을 추모하면서 자유를 향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베를린 장벽의 붕괴 기념일이 행복한 순간의 기억이지만, 현재 목도하고 있는 증오와 인종차별, 반유대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점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와 민주주의, 평등과 법치, 인권 등 유럽의 기틀이 되는 가치를 계속 지켜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유는 당연히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모두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독일을 비롯해 유럽에서는 극우 정치 세력이 부상하고 있으며, 헝가리와 폴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법치를 무너뜨리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쥐트도이체차이퉁과의 인터뷰에서 옛 동독과 서독 지역 간 격차 해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격차를 해소하는 데 반세기가 더 걸릴 수 있다”고 예상했다.
베를린 기념식서 "장벽 아무리 높아도 무너져"
"증오·인종차별 막고 자유·민주·법치 지켜야"
폼페이오 미 국무, 중·러 겨냥 "독재 재부상"
'트럼프 대통령이 골치인데 무슨…' 반응도
베를린 장벽 붕괴가 서방의 질서를 바꿔놓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자국 우선주의를 추진하는 미국, 그리고 흔들리는 유럽연합(EU) 등에 대한 우려가 나온 것이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힘이 유럽으로부터 빠져나가고 있고 독재 모델도 세를 얻고 있으며, 미국은 점점 내부를 바라보고 있다"고 우려했다고 BBC가 전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기념식을 앞두고 독일을 방문했다. 그는 기념식에 참석하진 않았지만 전날 연설에서 “자유는 보장되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러시아와 중국 정부의 인권 문제를 비판하면서 “오늘날 독재가 다시 부상하고 있다”라고도 했다. 그렇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러시아 정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려 하고 중국뿐 아니라 EU와도 무역 전쟁을 벌이며, 안보동맹 비용 분담 문제로 삐걱거리는 등 갈등을 빚고 있어서 폼페이오의 입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가디언 등 유럽 언론들에서 나왔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