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다 할 사전 논의 없이 타지역 학생 선발권을 잃게 된 학교는 "인구 감소 속에 서울 등 대도시 학생이 찾아오는 학교로 만들려 노력해왔는데, 정부가 의견 수렴도 생략한 채 이를 수포가 되게 했다"고 반발했다. 주민·동문 등 지역사회도 "인구 절벽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지방 소도시, 농어촌의 '지역 살리기' 노력에 재를 뿌렸다"고 비판했다.
교육부 자사고·외고·국제고 폐지에
농어촌고 '전국모집 특례' 폐지 포함
학교들 "지역 학생 부족, 폐교 불가피"
주민 "정부가 지역살리기에 재 뿌렸다"
지역사회 "지역 명문 폐교 우려"
'조국' 불똥 맞은 농어촌 명문고들
자사고·외고의 전환 시점에 맞춰 전국 모집 특례가 폐지될 농어촌 자율학교는 대부분 비평준화 지역에 있는 일반고로, 전국 49곳에 이른다. 여느 일반고와 달리 특성화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고, 학교가 위치한 지역뿐 아니라 다른 시·도의 학생도 입학할 수 있다.
교육부 "선발권 유지하면 또 다른 고교서열화"
반면 정부가 농어촌 자율학교의 선발권 박탈 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거나 사전에 이들 학교와 논의한 적은 없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해도 농어촌 자율학교의 학생선발권을 유지하면 또 다른 형태의 고교서열화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모집 특례를 폐지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른 시도 학생 없으면 학교 문 닫아야"
1972년 경남 남해군에 설립된 남해해성고는 학생 수 감소로 폐교 위기까지 몰렸다. 하지만 2004년 자율학교 지정 이후 교사들의 노력으로 '사교육 없는 학교'이면서도 'SKY(서울·고려·연세대)' 등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학교로 거듭나면서 학생·학부모의 인기를 끌었다.
강 교장은 "지역에 일반고가 세 곳이 더 있는데, 이들의 신입생 정원을 합하면 남해군 중학생 인원보다 더 많은 상황"이라며 "학령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지역 소도시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이번 결정은 철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일고의 신일수 교장은 "인구 감소로 충남 지역 모집 정원은 매년 미달하고 있다. 충남 출신 중학생으로는 채울 방법이 없는데 정부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정책을 내놓은 건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학생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1953년 개교한 경남 거창군의 거창고 박종원 교장은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잘못 잡은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거창고는 인성교육과 수준별 학습지도 등을 통해 자율학교의 성공모델로 꼽혀, 매년 40여 개 이상의 학교와 단체가 벤치마킹을 위해 찾아온다.
박 교장은 "정부 논리대로 시골에 있는 학교에는 시골 아이만 다녀야 한다면, 서울대는 서울 학생만 가야 하냐"며 "서울 학생이 지방으로 내려와 공부할 수도 있고, 지방 학생이 서울로 갈 수도 있는 자유가 주어져야 각자 행복한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살리기와 엇박자" 비판 거세
주민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다. 경남 거창에서 부동산중개소를 17년째 운영 중인 천진례(66)씨는 "거창엔 공장이 하나도 없어 젊은이가 대부분 대도시로 떠나고 노인만 남는 상황인데 그나마 거창고를 통해 서울·부산 등의 대도시 학생이 오고 부모도 이사오는 경우가 있어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 거창고를 찾는 대도시 학생 발길마저 끊기면 지역이 한층 침체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졸업생도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2002년 거창고를 졸업한 이모(36)씨는 "내 모교는 여느 학교와 달리 성적보다 인성교육에 집중하는 특색이 있어 전국에서 학생이 찾아오는 곳"이라며 "이런 학교의 입학을 막는다는 건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의 선택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육학자들은 정부가 고교서열화 해소라는 목표만을 위해 수월성 교육을 표방하는 모든 학교에 '족쇄'를 채우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과 교수는 "거창고·한일고·공주사대부고와 같은 학교는 해당 지역의 교육 거점 역할을 해온 긍정적인 면이 있는데 이들까지 평준화하면 지역 사회에 타격이 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행정안전부 등이 지역 살리기에 역점을 두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우수학교를 만들려 정성을 쏟아 왔는데 교육부의 정책 선회는 지방자치의 정신, 지역 살리기라는 정책 기조 모두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일반고 고교학점제가 정착되면 기존 농어촌 자율학교뿐 아니라 지역의 모든 일반고에서 수월성 교육이 가능해진다"며 "농산어촌 지역 학교를 '고교학점제 선도 지구'로 지정하고, 교원 및 인프라를 제공하는 등 집중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충남·경남=김방현·이은지 기자 hspark9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