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감동은 절제된 감정에서 오는 것

중앙일보

입력 2019.10.31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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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달자 시인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 //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 푸른 불꽃이 어른거린다 // (중략) 오직 간절함 그 안으로 동이 터 오른다.” (‘간절함’ 중에서)
 
신달자(76) 시인이 열다섯 번째 시집 『간절함』(민음사)을 냈다. 2016년 『북촌』을 낸 뒤 지난 3년 동안 쓴 시 70편을 담았다. 신 시인은 최근 교통사고로 허리뼈가 골절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시집을 내기 위해 침상에 누워 교정쇄를 검토해야 했다. 그는 “한 달 누워 있었더니 내가 앉고 서고,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시집 『간절함』 펴낸 신달자 시인

어렵게 나온 이번 시집의 주요 소재는 인간의 감정이다. 시인은 ‘아득함’에 대해서는 “닿는 것은 세상사 아무것도 없다 / 바로 앞의 사람이 더 아득하다”고 적었고, ‘심란함’에 대해선 “오늘 내 가슴속 / 누가 무지갯빛 떡메를 치는가”라고 물었다. 이밖에 졸여짐·무심함·짜릿함·싸늘함 등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상적인 감정들이 각각 한 편의 시로 묶였다.
 
신 시인은 “젊은 시절에는 내가 마치 감정이라는 영역에 특허를 낸 것처럼 감정을 키우고, 감정에 갇히고, 감정에 짓눌려 살았다. 하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나치게 감정을 남발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울음이라도 엉엉 우는 것보다 울음을 견디는 것이 더 비장해 보인다. 이처럼 문학도 절제에서 더 큰 감동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후회는 시집의 말미에 실린 산문 ‘나를 바라보는 힘’에도 등장한다. 그는 “인생에 후회가 있다면 남발한 내 감정”이라며 “그것에 형체가 있다면 두 팔을 묶어 감옥에라도 넣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니 스스로 만든 감옥에 넣기도 했지만, 그는 너무 자주 출소하거나 도망쳐서 내 가슴에 면도날 자국을 그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시인이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감정이 절제된 시’다. 신 시인은 “예전에는 괴로움을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인 말로 가리려고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시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시 한 편을 쓰더라도 정직하고 담백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