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욱 통계청장은 브리핑에서 “지난해와 비교해 비정규직 증감 규모를 온전한 증감으로 해석하지 말아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통계 조사 방식을 바꿨더니 비정규직 규모가 35만~50만 명가량 늘었다는 게 그 이유다. 기존에는 조사 대상자에게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는지만 물었다면 이번엔 고용 예상 기간까지 조사한 결과, 기간제 비정규직이 늘게 됐다는 설명이다. 쉽게 말해 과거 조사에선 ‘고용계약 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응답해 ‘정규직’으로 분류된 사람이 ‘기간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고용 예상 기간이 3개월 정도 된다’고 응답하게 되면서 ‘기간제 비정규직’으로 분류됐다는 의미다. 이런 분류는 국제노동기구(ILO)에서 강화한 기준에 따른 것이다.
“통계 기준 달라져 비정규직 늘어”
그걸 참작해도 최대 51만 명 증가
노인 단기 일자리, 알바 급증 등
정부, 고용 현장의 ‘팩트’ 부정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이런 결과를 초래한 원인을 분석하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다. 그런데 통계청장이 직접 나서 “과거 통계와 비교하면 통계 이용자의 혼선을 야기할 수 있다”는 난데없는 해석을 붙인다. 정책당국인 기획재정부는 한술 더 뜬다. 김용범 기재부 제1차관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다른 조사에선 기간제 근로자의 급격한 증가가 발견되지 않고 있어 이번 조사에서 통계 (조사 변경)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숫자가 말해 주고 있는 고용시장의 위험 징후를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다. 같은 통계청 자료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파악한 비정규직(Temporary Workers) 규모도 나와 있다. 올해 한국은 76만70000명 증가했다. 지난해 증가 폭(11만7000명)의 7배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독일·영국·캐나다·네덜란드 등 다른 나라에선 비정규직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한국만 급증했다.
최근 고용 동향의 흐름을 보면 이런 결과가 나오리란 건 비전문가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청와대는 “고용의 질은 개선되고 있다”고 밝혀 왔지만 실상은 노인 단기 일자리 등 재정사업과 외국인 관광객 증가에 따른 음식·숙박업 아르바이트 증가, 1~17시간 초단기 근로자 증가 등이 고용률 상승의 원인이었다.
과거 수치와 비교할 수 없는 통계는 ‘깜깜이’ 통계다. 그런데 통계청은 정밀한 비정규직 규모를 측정했다고 해놓고 다른 의미를 부여해 불필요한 오해를 자초한다. 악화된 지표에 전 정권 탓, 외부 요인 탓으로 책임을 돌리던 정부가 이제는 ‘통계 탓’을 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