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국악관현악단 '3분 관현악'- 시간 초월한 국악과 '짤방' 트렌드의 파격적 만남

중앙일보

입력 2019.10.28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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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악관현악단이 또다시 파격에 도전했다. 올 상반기 대중 뮤지션 양방언에게 신곡을 위촉한 데 이어 이번에는 요즘 젊은 세대 문화인 ‘짤방’ 트렌드를 과감히 활용했다. 지난 24~25일 공연된 ‘3분 관현악’은 통상 한 악장에 10분이 넘는 관현악곡을 ‘3분 이내 속전속결’이라는 독특한 컨셉트로 삼아 온갖 시도를 해보는 실험실 같았다. 시간이라는 차원 너머에 있을 것 같은 유장한 호흡의 국악에 ‘압축과 축약’이라니, 도발이 아닐 수 없다.  
 

3분관현악

하지만 국악관현악이 이제껏 어디서도 경험한 적 없는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과감히 시도했다는 점은 분명 의의가 있다. 국악관현악은 1965년 서양 오케스트라를 모방한 서울시국악관현악단의 창단과 함께 탄생했다. 1985년 KBS국악관현악단, 1995년 국립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되면서 르네상스를 맞았지만, 작곡가와 작곡 기법의 부족 탓에 늘 레퍼토리 빈곤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유주현기자의 컬처FATAL]

50여년의 역사에도 전문가의 범주를 벗어나 일반 대중에게까지 널리 사랑받는 ‘국민 레퍼토리’를 갖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할 시점인 것이다. 애초에 국악관현악이 국악 대중화·현대화를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형식이라는 점을 상기할 때, 이런 실험은 숙명에 가깝다.    
 
평균 연령 33세의 젊은 작곡가 10명에게 3분 내외의 짧은 관현악곡을 위촉해 나름의 스토리텔링으로 재구성했다. 과연 3분 안에 음악적 기승전결을 담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지만, 10명의 작곡가들은 저마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1, 2부로 나누어 각각의 컨셉트를 차별화한 구성도 눈길을 끌었다.
 

3분관현악

서곡으로 등장한 최덕렬의 ‘조율’은 이 연주회의 주제 자체를 음악으로 재해석했다. 거문고·피리·해금·타악기 등 각 악기들의 ‘짧은 독주’를 통해 국악관현악을 구성하는 다양한 소리들을 들려줬다. 짧은 시간 안에 곡 진행이 변화무쌍한 대중가요처럼, 여러 악기의 개성을 압축해서 엑기스로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이어진 1부는 협업 컨셉트다. ‘어느 예술가의 초상’과 ‘어느 예술가들의 순환’은 장민석·김현섭·김영상 등 3명의 작곡가가 따로 또 같이 하나의 큰 곡을 완성한 독특한 구성이었다. 1~3악장까지 각각 생황·거문고·해금 협주곡이 3분씩 이어지고, 4악장에서 세 작곡가와 세 악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구조였다. 


3분관현악

참신한 시도는 박수칠 만했다. 하지만 ‘3분짜리 협주곡’은 무리수로 보였다. 주인공인 협연자를 돋보이게 하면서 악단도 일정한 역할을 해야 하니 말이다. 특히 세 작곡가가 함께 작곡했다는 4악장은 ‘젊은 예술가가 꿈꾸던 이상향에 도달했다’는 이야기라기엔 그리 이상적으로 들리지 않았다. ‘정화’라는 제목과 달리 생황·거문고·해금이 서로 섞이지 않고 부딪쳐 밀어내면서 시종 불안하고 긴장감이 감도는 음악을 만들어냈다.  
 

3분관현악

반면 2부는 각 작곡가들이 아무 연관성 없이 각자의 작업을 한 결과물들을 하나의 무대에 잘 꿰어낸 컨셉트였다. 장석진의 ‘목멱산’은 3악장의 곡에 악장마다 3분을 할애해 가장 완성도를 갖췄다. 완급 조절을 잊은 듯 긴장감으로 휘몰아치던 1부를 털어내고 기승전결을 제대로 보여줄 여유를 찾았다고나 할까. 듣는 이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타령 모티브 한 가지를 여러 갈래로 변주한 최지운의 ‘윤슬’, 중독성 강한 대중가요의 후크송처럼 반복되는 선율이 돋보였던 양승환의 ‘판타스마’, 정수연의 ‘백일몽’ 등 나머지 2부의 곡들도 하나의 주제에 충실해 3분이라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특히 이고운은 ‘마지막 3분, 무당의 춤’을 통해 마치 재즈클럽에 온 듯한 음악을 들려줬다. “국악으로 이런 소리가 가능하다니”라는 감탄과 함께, 연주자들도 스스로 추임새를 넣으며 그루브 넘치는 무대 매너를 선보여 가장 큰 박수를 받았다. 마지막 곡인 김창환의 ‘취.타’도 아름다운 선율을 기반으로 한 대합주가 하나로 모아지는 조화로운 소리를 펼쳐 마치 축제의 마무리 같은 카타르시스를 선사했다.  
 

3분관현악

2부의 모든 곡들이 확장된 버전을 다시 만나고 싶을 만큼 듣기 좋았다. 욕심부리지 않고 각자 하나씩의 모티브로 발전시킨 샘플곡으로 어필하는 느낌이 ‘3분 관현악’이라는 공연의 컨셉트에 제대로 어울렸다. 점점 흥이 고조되는 하나의 공연으로서의 구성도 훌륭했다. 관객으로선 국악관현악의 진정 다양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순서였다. 더 많은 젊은 작곡가들의 과감한 실험을 만나고 싶어졌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국악관현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