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40년간 한국 노하우 흡수
거듭 올림픽 열면서 경제 발전
고도화로 선진 시스템 확산 중
미국 견제에도 6%대 성장 지속
나아가 한국은 중국에 시장경제와 첨단기술을 적극적으로 전수했다. 그 계기는 의외의 분야에서 시작됐다.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는 올림픽이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때의 비화를 소환해보자. 당시 한·중 교류에 앞장섰던 김한규 21세기한중교류협회 회장의 기억을 옮긴다. “당시 미수교 상태였지만 양국은 스포츠를 매개로 비공식 접촉을 하고 있었다. 베이징 아시안게임이 코앞에 닥쳤는데도 중국은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회에 쓸 차량은 물론 사무용 복사기도 넉넉지 않았다.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는 각각 자동차 780대와 복사기 100대를 제공했다. 이뿐만 아니라 대회 운영 경험(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도 전수했다.” 중국은 이 스포츠 제전을 통해 한국의 선진 시스템과 자본주의의 강점을 신뢰하게 됐다.
제철소 재활용해 환경올림픽 개최
이로써 한국도 큰 시장을 얻었다. 홍콩까지 포함하면 중국은 지금 한국 수출의 35%를 받아주고 있다. 중국이 한국 제2의 내수시장이란 얘기다. 이같이 한국은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이 깊은 잠에서 깨어난 뒤 지난 40여년간 경제 굴기에 없어선 안 될 역할과 기여를 해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이 중국과 ‘샴쌍둥이’라고 할만큼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커지면서 부메랑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이런 상황은 거꾸로 보면 중국의 한국 경제 의존도 축소를 의미한다. 나아가 중국 경제는 고도화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2년여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동계올림픽(2022년 2월)은 중국 경제의 고도화와 굴기의 완성이 아닐까 싶다.
중국은 오히려 7%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면서 올해 14억이라는 거대 인구에도 불구하고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하는 원년을 맞이하게 된다. 한국이 불과 20년 전 김영삼 정부 때 외환위기를 당하면서 1998년 7600달러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상하이·광둥성 같은 동남부 경제특구 지역의 국민소득은 2만~3만 달러에 달한다.
굴기의 완성을 얘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중국에서 한국의 전통 제조업은 안타깝게도 더는 존재감을 갖지 못한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은 점유율 1%가 힘겹고, 현대자동차도 공장 가동을 줄이고 있다. 중국 도시의 거리를 걸어보면 중국 토종 전기전자·자동차 제조사의 판매점과 광고판이 즐비해진 것도 상전벽해 같은 변화다. 모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둘째 이유는 동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 경제의 고도화다. 이번에도 중국은 한국을 깊숙이 벤치마킹했다. 한국의 (이제는 별로 없지만) 장점은 흡수하고 단점을 과감하게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중국은 많은 레거시(후유증)를 남긴 평창올림픽을 면밀히 연구했다. 공사비가 부족해 대회 직전까지 불안했고, 대회가 끝난 뒤에는 폐허로 둔갑해 돈만 날리는 이중고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점을 눈여겨봤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곳은 베이징 시내에 들어섰던 수도철강(중국명: 서우강·首鋼그룹) 부지다. 중국은 이번 행사를 환경올림픽으로 승화하고자 공기 오염원이 될 수 있는 1919년 베이징이 들어선 이 제철소를 2008년 폐쇄했다. 이번에는 이 자리를 과감하게 리모델링해 동계올림픽 사무공간과 호텔, 경기장으로 바꾸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한국을 서너 수 앞서가는 경제 발전 모델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대회가 시작도 되지 않았는데 견학을 위한 생태환경 관광객이 국내외에서 몰려들고 있다. 베이징에서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천안문 건국 70년 밝힌 토종 LED
국가 경쟁력의 원천인 제조업에서도 중국이 곳곳에서 한국을 따라잡고 있다는 평가를 부정하기 어렵다. 이런 판단은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촌에 자리잡은 LED 제조사 ‘리야더(利亞德)’를 방문했을 때 직감했다. 여기서 먼저 10년쯤 된 얘기를 먼저 소환할 필요가 있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도 중국은 경제 굴기를 본격적으로 알리기 위해 광둥성 선전(深圳)에 위치한 LED 기업을 보여줬다. 그때 충격은 지금도 눈앞에 생생하다. 화면을 여러 장 연결한 거대한 LED를 제작해 보여줬기 때문이다.
이 정도 실력이면 중국이 내수용 LED 디스플레이 시장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봤다. 역시 중국은 격렬한 내수 시장 경쟁을 통해 지난해부터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삼성·LG를 위협하고 있다. 다시 리야더로 돌아오자. 리야더는 10년 전 선전의 이름 모를 LED기업과는 기자를 대하는 자세부터 달랐다. 젊은 직원 한 명이 나와 일반 소비자가 돌아보는 체험관을 둘러보면서 소개해주는 것이 안내의 전부였다. 간부는 물론 핵심 기술자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한국의 낮아진 위상을 체감하는 듯한 시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술이 완벽해 보였다. 전시관에는 다양한 형태의 응용 제품이 있었는데 거대한 디지털 화면은 물론 디지털 연못과 디지털 식당, 가상현실(VR) 전투장까지 LED 화면으로 구현하지 못하는 제품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리야더는 지난 1일 천안문광장에서 열린 건국 70주년 기념행사의 디지털 화면도 제작했다. 중국 것이 아닌 것은 거대한 디지털 화면에 상영되는 싸이의 강남스타일과 지드래곤의 노래뿐이었다. 중국이 머지않아 소프트파워까지 갖추면 이마저도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대 중국과 계속 교류하고 상생하기 위해선 이제 한국만의 차별화밖에는 없게 됐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