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관계자는 "살인 사건과 달리 성범죄는 횟수도 많고 워낙 과거에 저지른 범행이라 이춘재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고 25일 말했다.
경찰은 이춘재가 군을 제대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살해해 수감된 1994년까지 행적을 살펴보고 있다.
미수 범행도 있었다. 2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1986년 10월)이 발생한 뒤 한 달 정도 지난 1986년 11월 30일 태안읍 정남면 보통리에서 45세 여성이 변을 당할 뻔했다. 이 여성은 흉기로 위협하며 돈을 요구하는 용의자에게 “끌려올 때 가방을 떨어뜨렸다”고 거짓말을 했다. 용의자가 가방을 찾으러 간 사이 도주했다. 이 여성이 진술한 용의자의 생김새는 25~27세 정도에 키가 160~170㎝인 남성으로 당시 이춘재와 비슷하다.
이춘재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성범죄는 충북 청주에서도 발생했다. 김모(60·당시 32세)씨는1991년 1월 16일 오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택지개발공사장에서 집으로 향하던 중 한 남성의 습격을 받았다. 그는 김씨의 바지를 벗겨 머리에 씌우고 스타킹 등으로 손과 발을 묶었다. 김씨는 이 남성이 한눈을 판 사이 콘크리트 하수관으로 기어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김씨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가로등이 없어서 얼굴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는데 갸름하고 예쁘장했다. 체구는 작고 마른 편이었다"며 "이춘재 같다"고 말했다.
포크레인 기사로 일했던 이춘재는 1991년 전후로 화성과 청주 공사 현장을 오가며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피해자 신고 안 한 듯
실제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 화성지역엔 "며칠 전 누가 성폭력 피해를 봤다더라"는 뒤숭숭한 소문이 계속 이어졌다. 경찰이 소문을 추적해 피해자를 확인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33년이 지난 현재도 일부 피해자는 경찰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아무래도 성범죄다 보니 과거 피해자들을 접촉하기도 쉽지 않다"며 "과거 수사기록과 신문기사, 제보 내용 등을 토대로 피해자들과 접촉하는 등 이춘재와의 연관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거물 없는 살인 사건, 그림 그려가며 자백
경찰은 지난 14일 이춘재를 피의자로 정식 입건한 뒤 8차례 대면 조사를 통해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에 대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 중 3·4·5·7·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의 DNA가 검출됐다. 경찰은 나머지 1·2·6·8·10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수원·화성·청주에서 발생한 4건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있다.
그러나 1·6차 화성 살인 사건과 이춘재가 추가로 자백한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1987년 12월), 화성 초등생 실종 사건(1989년 7월), 청주 여공·가정주부 살인사건(1991년 1·3월)은 현재 증거물이 없다. 8·10차 증거물에선 이춘재의 DNA가 검출되지 않아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있다.
경찰은 과거 수사기록 등을 살펴보며 이춘재 자백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는 한편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남은 2차 화성 살인 사건 증거물에 대한 DNA 검사를 의뢰했다.
최모란·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