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인간혁명]정치 '아싸'의 이유 있는 돌풍
그의 돌풍은 핵심 공약인 '보편적 기본소득(UBI)' 덕분입니다. 18세 이상 모든 미국인에게 월 1000달러씩 주겠다는 거죠. 나중에는 비트코인 같은 암호화폐로 주는 게 목표입니다. 방송 후 그의 지지율은 급상승 했습니다. 그런데 양이 말하는 기본소득은 정말 가능한 걸까요. 아니면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포퓰리즘일까요. 오늘 ‘인간혁명’은 멀리는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현재까지 논의된 기본소득의 내용과 실현 가능성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노동이 사라진 시대
이처럼 미래사회의 사람들이 빈민 또는 난민처럼 그려지는 이유는 뭘까요? 핵심 원인은 바로 일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면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직 상태에 놓입니다. 실제로 영화 속 배경인 오하이오는 IT기술의 발달로 쇠락한 미 북동부의 공장지대인 러스트 벨트(펜실바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등)중 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지난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가 ‘제조업 부활’ 공약으로 돌풍을 일으켰죠.
삶의 낙은 가상현실
이 작품처럼 미래를 그린 많은 영화들이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를 묘사합니다. ‘블레이드 러너’나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셀’은 화려한 도시와 빈민가를 대비해 보여줍니다. 도심의 초고층 빌딩엔 네온사인과 홀로그램으로 반짝거리는 광고판들이 수두룩하지만 정작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기업들의 마케팅이 넘쳐나고 소비를 부추기지만 정작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는 별로 없습니다. 일자리가 없어 구매력 또한 사라진 ‘노동의 종말’ 시대기 때문입니다.
20대 80의 사회가 온다
80%가 일자리를 잃게 될 거라는 머스크의 전망은 이미 현실이 돼가고 있습니다. 요즘 식당가에 가면 별도의 계산원 없이 직접 음식을 주문하는 키오스크가 보편화 돼 있습니다. 국내업체인 배달의 민족은 AI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로봇카페를 오픈했고 테이블 사이를 ‘자율주행’하는 서빙 로봇도 개발했습니다. 이밖에도 드론을 이용한 택배, 상담 전문 채팅봇 등 기계와 AI의 일자리 침투는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다보스포럼은 2020년까지 500만개 이상의 일자리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2033년까지 현재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일본의 경영컨설턴트 스즈키 타카히로는 자신의 책 『직업소멸』에서 “30년 후에는 대부분의 인간이 일자리를 잃고 소일거리나 하며 살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기술 발전으로 ‘직업 증발’
이처럼 미래 인간의 일자리는 대폭 사라질 전망입니다. 문제는 직업이 천천히 없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증발해 버린다는 거죠. 미국에선 1880년대 처음 등장한 엘리베이터 도우미가 1950년대 12만 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1960년대 6만 명으로 반 토막 난 뒤 얼마 후 사라졌습니다. 국내에서도 ‘안내양’으로 불렸던 버스 차장이란 직업이 존재했으나 1980년대에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자동문과 하차 벨이 개발됐기 때문이죠.
‘직업 증발’이 대표적으로 예고된 업종 중 하나는 운수업입니다. 자율주행기술 탓입니다. 일반 자가용의 경우 상용화까진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노선이 일정한 화물트럭이나 버스와 같은 대중교통은 자율주행이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자동화와 AI의 확산으로 소수의 관리 인력만 필요하게 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자가 거의 없는 경제로 향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지적 노동 대체하는 기술혁명
그러나 AI 기술혁명은 인간의 신체는 물론 지적노동까지 대체합니다. ‘직업 증발’이 예고되는 근본적 이유입니다. 지적노동을 하는 직업 중 위기에 처한 대표적인 일자리가 전문직입니다. 2016년 가천대 길병원이 국내 처음 도입한 AI 의사 왓슨은 수십만 명의 환자 데이터와 1500만 쪽에 달하는 의학 자료를 갖고 있습니다. 인간 의사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지식의 양이죠.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왓슨은 환자에 대한 진단과 처방을 단 8초 만에 내립니다.
AI 의사·변호사의 등장
법조인도 마찬가집니다. 30년 동안 법관을 지낸 강민구 부장판사(전 법원도서관장)는 변호사의 업무를 예로 듭니다. 그는 “유능한 변호사를 판단하는 기준은 ‘법조문과 해당 판례를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였다”며 “하지만 법률지식에 있어 인간 변호사는 앞으로 AI를 따라갈 수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뉴욕의 유명 로펌 ‘베이커드앤드호스테들러’에 처음 도입된 AI 변호사 로스는 초당 1억장의 법률 문서를 검토해 개별 사건에 가장 적절한 판례를 찾아내 추천합니다.
노동의 종말 시대 필수조건 ‘기본소득’
일본의 고마자와대 이노우에 도모히로 교수는 『모두를 위한 분배: AI시대의 기본소득』이란 책에서 “기본소득은 최소한의 생존이 가능한 선에서 제공하기 때문에 더 나은 삶을 위한 터전을 마련해준다”고 말합니다. 그는 “기존의 복지정책은 수급자에게 소득이 생기면 수급액이 줄어 일할 의욕을 해치지만 기본소득은 그와 정반대”라고 지적합니다.
앤드류가 쏘아올린 ‘생존’ 공약
양이 내놓은 해법은 간단합니다. AI와 자동화로 혜택을 보는 기업들로부터 부가가치세(VAT)를 걷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한다는 거죠. 그러면서 아마존을 예로 듭니다. “연간 2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아마존이 세금은 내고 있지 않다”며 “아마존 때문에 수많은 점포가 문을 닫지만 우리에게 돌아온 것은 세금 0달러”라고 말합니다. 아마존을 비롯한 페이스북, 구글 같은 IT기업들이 인간의 일자리를 없앤 만큼 세금을 더 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미래엔 개인정보가 원유보다 더 큰 가치”
그는 “미래사회의 개인정보는 원유보다 더욱 큰 가치를 지닌다”면서 알래스카 주민들의 ‘오일 체크(oil check)’를 예로 듭니다. 알래스카 주정부는 1974년부터 유전 수입을 영구기금으로 만들어 모든 주민에게 원유 배당금을 지급합니다. 현재 기금 규모는 약 440억 달러에 달해 미래세대까지 충분히 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양의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인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양의 기본소득은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그 동안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다음 주에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sam@joongang.co.kr
#'윤석만의 인간혁명'은 월간중앙 11월호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윤석만 기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