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카 천덕꾸러기” 공영주차장·다리밑 알박기 주차전쟁

중앙일보

입력 2019.10.25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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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카 주차문제로 민민 갈등이 이어지면서 일부 지차체는 캠핑카를 주차할 수 있는 복합 공영주차장을 만들고 있다. 심석용 기자

 
경기도 김포시에 사는 박모(38)씨는 주차문제로 고민이 많다. 지난 4월에 산 캠핑용 카라반(승용차에 매달아 끌고 다니는 이동식 주택) 때문이다. 높이 탓에 지하 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하는데 거주하는 아파트에는 지상 주차장이 없다. 인근 공영주차장에서 주차를 거절당하기도 수차례, 시청에 문의해 겨우 카라반을 주차할 곳을 찾았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결국 그는 집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서울시의 한 개인 주차장에 웃돈을 주고 카라반을 맡겼다. 박씨는 “가족들과 캠핑을 즐기려고 산 카라반이 주차 문제로 천덕꾸러기가 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캠핑카·캠핑트레일러 등록 현황. 그래픽=심정보 shim.jeongbo@joongang.co.kr

캠핑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캠핑카나 카라반 등을 구입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주차공간이 미흡해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24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캠핑카와 캠핑트레일러는 1만6384대(튜닝 차량 제외)다. 2014년(4075대)에 비해 4배로 늘었다. 여기에 국토교통부가 일반 승용·화물·특수차를 캠핑카로 개조할 수 있도록 한 ‘자동차 튜닝에 관한 규정’이 지난 14일부터 시행되면서 캠핑카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등록 차량 5년 새 4배로 늘었지만
“차 세울 곳 없다” 불법주차 골머리
인천·부천선 전용 주차장 개설도
전문가 “차고지 증명제 등 필요”

주차공간 부족에 주민 간 갈등까지

문제는 캠핑카를 수용할 수 있는 주차 공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현재 판매되는 캠핑카·카라반 차량은 폭 2.48m, 길이가 7.8m 정도다. 그러나 일반 공영주차장의 주차면은 대부분 표준규격인 폭 2.3~2.4m, 길이 5.1m다. 이 때문에 캠핑카·카라반 차량은 보통 2개 면에 주차한다. 캠핑 때만 이용하기 때문에 장기 주차를 하는 경우가 많다.
 
민민(民民) 갈등도 빈번하다. 관리비를 별도로 낸다고 해도 주차 공간이 적은 아파트 등에선 환영받지 못하다 보니 일부 캠핑카 소유주들은 공영주차장이나 도로변, 공터 등에 주차한다. 이를 두고 “안 그래도 부족한 주차공간을 캠핑카 등이 장기 사용한다”, “불법 주차”라는 민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단속 나섰지만 개선 어려워

경인 아라뱃길을 관리하는 워터웨이플러스가 불법 주차된 캠핑카에 이동을 요구하는 내용의 계도장을 붙이고 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진 워터웨이플러스]

 
지자체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천 서구에서 경기 김포시로 이어지는 경인아라뱃길에는 주차장과 다리 밑 도로 등에 장기 불법 주차된 캠핑카가 많다. 대대적인 단속을 벌이고 경고장을 부친 뒤 형사고발도 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아라뱃길을 관리하는 한국수자원공사(K-water) 관계자는 “그렇다고 개인 소유 차량을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어서 난감하다”고 말했다.


수원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공영 주차장에 캠핑카나 카라반 등을 주차할 수 없도록 차체 높이가 2.5m를 넘는 차량의 출입을 막는 높이 제한 시설까지 설치했다. 하지만 일부 캠핑카 소유주는 출입구의 땅을 파 통과하는 방식으로 몰래 주차하고 있다.
 
공영주차장을 관리하는 수원도시공사 관계자는 “캠핑카의 경우 차량 내부에 취사시설이 있어 ‘발화성·인화성 물질을 적재한 차량의 공영주차장 사용을 금지’하는 수원시 주차장 조례에 따라 출입을 막고 있다”며 “캠핑카가 고가의 대형차량이라 차지하는 비중도 크고 주차 시 긁힘이나 문 찍힘 사고 등도 발생할 수 있어 관리자 차원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복합 주차장 대안 되나

인천시 남동구는 올해 1월부터 논현동 소래 제3공영주차장을 캠핑카와 카라반까지 주차할 수 있는 복합공영주차장으로 개조해 운영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이에 일부 지자체는 캠핑카 등을 주차할 수 있는 복합주차장 건설에 나서고 있다. 지난 1월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에 문을 연 소래 제3 공영 주차장이 대표적이다. 무인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주차구역 총 100면 중 76면이 캠핑카·카라반 전용 구획이다. 현재 76면 모두 매진이 됐고 순서를 기다리는 대기자가 70명을 넘는다. 인천시민뿐만 아니라 경기도 시흥시, 고양시 등에서도 카라반을 맡기러 온다고 한다.
 
이곳에 카라반을 맡긴 노정욱(41·인천 연수구) 씨는 “일반 주차장이나 공터에 차량을 주차할 때에 비해 지정 좌석과 안전이 확보됐다”라며 “주차장 내에 이용자들만 사용 가능한 수도도 있어 편리하다”고 말했다. 지정석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이용자가 차량 명의를 바꾸지 않는 한 6개월마다 주차 요금을 지불하면 같은 자리에 계속 주차할 수 있다.
 
인천 남동도시관리공단 관계자는 “카라반 소유자들은 거주지 25~30㎞ 안에 있는 주차장은 거리를 감수하고 온다”라며 “반응이 좋아 제2의 복합공영주차장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 경기도 부천시도 캠핑카 전용 주차장을 마련했고 안산시, 용인시 등 일부 지자체는 공영주차장에 캠핑 차량 주차 공간을 할당해 운영하고 있다.
 
이훈 한양대학교 교수(관광학부)는 “캠핑 인구는 늘고 있지만, 편의시설은 제자리걸음인 것이 문제”라며 “공공기관에서도 캠핑카 전용 주차장 등 관련 시설을 늘리는 것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주차공간을 확보해야 차를 살 수 있는 ‘차고지 증명제’ 같은 관리 시스템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