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은 “(남측이) 금강산에 꾸려 놓은 시설들이 민족성을 찾아볼 수 없는 범벅 식이고, 피해지역의 가설막이나 격리병동처럼 들어앉았다”며 “그것마저 관리가 되지 않아 남루하기 그지없다”고 말했다. 또 “지금 금강산이 마치 북과 남의 공유물처럼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돼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 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남측서 1조원대 들어간 사업
“남북관계 상징 된 건 잘못된 일”
한국·미국·유엔 삼중제재망 겨냥
‘해제 안 하면 독자적인 길’ 압박
금강산 발언 의미
김정은 “격리병동 같은 시설” 폄하
김정일의 ‘첫사랑’ 현대와 단절
선대와 단절 각오한 결정 분석
“남북 공유물 아니다” 독자개발 뜻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 박왕자씨 피격 사건 이후 중단됐던 금강산 관광은 대표적인 한국의 대북 독자제재 대상이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관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상 대북제재 대상은 아니지만 북한과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고 말했다.
2017년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75호는 북한과의 합작 사업 설립·유지·운영을 전면 금지했다. 금강산 관광을 위해 남북 합작을 한다면 이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 2375호는 북한 노동자 고용도 금지했다. 즉 모든 유엔 회원국 국민과 기업은 북한에 상업적 목적의 투자를 하거나 북한 국적자를 채용할 수 없다.
김정은 “선임자들 잘못” 이례적 선대 정책 비판
김 위원장이 직접 연말을 비핵화 협상의 시한으로 못박은 상황에서 미국이 제재 해제를 하지 않을 경우 판을 뒤엎고 ‘독자적인 길’을 갈 것이라는 압박이다. 북한은 이미 “지금까지의 모든 조치들을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떠밀리고 있다”(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8월 31일 담화)는 식으로 핵실험 및 장거리미사일 시험 재개를 위협했다.
북한이 공식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5년 7월 금강산에서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가족을 만나 “사람에게 있어서 첫사랑이 중요하다. 우리는 북남 관계에서 당국보다 훨씬 앞서 현대와 첫사랑을 시작하였다”(『김정일 장군의 통일일화』)며 금강산 관광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선대의 권위를 훼손했다는 정치적 부담을 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손쉽게 관광지나 내어주고 득을 보려고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 년간 방치돼 흠이 났다”며 “국력이 여릴(약할)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의존정책이 매우 잘못됐다”고 지목했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선임자들’이 아버지인지는 불분명하다. 통일부 내부와 북한 전문가들은 아버지 김정일 위원장을 보좌했던 당시의 실무 책임자들을 지칭한 것으로 본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전례없는 ‘선임자들’ 비판은 선대 정책과의 단절로 비치는 것을 각오하고 내린 결정이란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남측과의 금강산 관광 단절을 선언하면서도 “남측 관계부문과 합의하여 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지난 3월부터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제외한 일체의 직접 접촉을 삼가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남측 시설물의 철거와 관련해 접촉의 장이 마련될 가능성이 생겼다. 그러나 남북이 금강산 관광 문제로 협상에 나설 경우 북한은 ‘관광 재개’와 ‘남측 철수’ 중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미국은 관광 재개를 위한 제재 해제는 비핵화와 속도를 맞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금강산 관광 문제가 다시 한·미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정용수·유지혜 기자 nky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