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홍콩 부호 수천 명은 불안한 정국에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앞다퉈 싱가포르 등 해외 계좌를 개설하고 있다. 싱가포르 은행 임원은 “지난 3개월간 홍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계좌가 개설됐다”며 “대부분이 73만~140만 달러(약 8억~16억원) 규모의 고액 예금”이라고 밝혔다.
골드만삭스 "3개월간 홍콩에서 5조원 이탈"
싱가포르 외화 예치금 3개월만에 80% 급증
홍콩 IPO 절반 급감…2008년 이후 최대 위기
WSJ "금융손실 우려에 중국 강경진압 못해"
중국 기업 역외 IPO 중 80% 홍콩에서 이뤄져
홍콩 헤지펀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 자금난을 겪고 있다. 지난 3분기(7~9월) 홍콩 헤지펀드에서는 10억 달러가 빠져나갔다. 이는 2009년 2분기 이후 가장 큰 규모다.
홍콩 증시에 상장하려는 기업도 뜸해졌다. 지난해 1~9월 344억5000만 달러(40조4000억원)를 기록한 홍콩 증시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올해 같은 기간 161억9000만 달러를 기록,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장기화된 민주화 시위는 홍콩 금융 시스템 전반에 타격을 주고 있다. 그런데 사실 중국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본토를 위한 금융 허브로서 홍콩의 기능은 독보적”이라며 “이는 중국이 어떤 강경 진압이라도 행한다면 상당한 금융손실에 직면할 것이라는 걸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홍콩은 중국 기업들이 역외에서 가장 많이 채권을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형 국유은행도 달러 표시 채권을 발행할 때 홍콩 금융 시장을 이용한다. 심지어 중국 기업은 홍콩에서 본토보다 상환 기간이 길고, 낮은 금리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홍콩 은행을 선호한다고 WSJ은 전했다.
중국 당국도 경제발전에 따라 급증하는 해외직접투자의 상당 부분을 홍콩을 거쳐 집행한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액 1380억 달러 중 65%에 달하는 900억 달러가 홍콩에서 왔다. 또 중국의 지난해 해외직접투자 1430억 달러 중 60%인 870억 달러는 홍콩으로 보내졌다.
한편, 홍콩 민주화 시위는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기도 흔들고 있다. 홍콩 소매판매는 지난 8월 전년 대비 23% 줄어들어 사상 최대폭의 감소를 기록했고,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는 360만 명으로 전년 대비 40% 급감했다. 이달 국제통화기금(IMF)은 홍콩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월의 2.7%에서 0.3%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