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의 비극이 가르쳐 준 국제정치의 본질
쿠르드의 비극은 한 세기에 걸쳐 있다. 현재진행형이다. 백 년 전 1차대전 종전은 쿠르드 민족국가 수립의 호기였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가 운위될 때다. 몰락한 터키 제국의 영토 재편을 합의한 전승국들은 쿠르드의 자치권도 약속했다. 아나톨리아 동부 산악지대와 메소포타미아 북쪽지방, 이란 서북부 등 광범위한 지역을 아우르는 쿠르드의 나라가 보이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 선택은
분쟁 개입 피로감 의식한 선거전략
국제정치는 국내정치 종속변수
여론과 정치 기상도 함께 읽어야
속내는 다른 데 있었다. 산악 민족 쿠르드의 용맹성은 유목 민족 아랍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자칫 영국 이익에 반하는 껄끄러운 국가가 들어설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였다. 쿠르드 남부 지역 모술과 키르쿠크에 대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던 석유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쿠르드는 터키 공화국, 이란, 이라크, 시리아 왕국 네 나라로 흩어졌다. 투르크, 페르시아, 아랍 치하의 소수 민족으로 전락했다.
이렇게 백년 전 영국을 위해 싸우고도 독립을 놓쳤던 쿠르드다. 백년 후인 오늘, 이번에는 믿었던 미국을 돕고도 미국으로 인해 다시 좌절하고 있다. 앵글로색슨과의 악연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이로써 중동의 역학구도는 어떻게 전개될까. 먼저 대(對)테러전선의 약화를 짐작해 볼 수 있다. 터키의 공격으로 쿠르드의 피난이 시작되면서 벌써부터 IS 부활 이야기가 나온다. 그간 쿠르드가 감시하던 수용소 내 테러리스트의 가족 및 방계 세력 관리 문제가 불거졌다. 그 뿐 아니다. 만일 터키가 원하는 안전지대 설치 후, 이 곳으로 300만 넘는 터키 내 시리아 난민을 돌려보낸다면 일대 혼란이 불가피하다. 이 와중에 또 다른 폭력적 극단주의 세력이 나타날 때, 미국과 공조할 현지 세력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상식이다.
둘째, 미군 철군의 최대 수혜자는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이다. 자치 독립을 주장하는 분리주의 반군 세력을 총 한발 안 쏘고 자연스럽게 제압한 셈이다. 쿠르드를 순니 아랍 반군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게 되었다. 터키의 위협을 받는 시리아 쿠르드가 결국 아사드에게 보호를 요청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일대혼돈에 빠진 중동 정세
넷째, 터키는 잃을 것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최근 권위주의 성향이 가속화되고 있는 에르도안 정부의 집권당이 이스탄불 등 주요도시 지방선거에서 패배하며 여론이 악화되던 차였다. 터키 민족주의 정서를 환기하면서 강하게 대외정책 노선을 보여준 셈이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터키의 최대 위협세력 쿠르드를 뭉뚱그려 격하하는 비판까지 끌어냈다. 쾌재를 부를만하다.
다섯째, 이스라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된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쿠르드와 안보 협력을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온통 적대적인 아랍과 이란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스라엘은 또다른 고립된 소수 민족 쿠르드에 공을 들였다. 구약시대부터 역사적 유대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 안보분야에는 쿠르드 출신 유대인 이민자들이 꽤 진출해있다. 만일 쿠르드가 적대국 시리아의 보호로 들어가게 되면 그 자리에 똬리를 틀 이란 시아 민병대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을 위협할 것이다. 단순히 미군 철군의 문제가 아니다. 자칫 그 자리에 이스라엘의 최대 주적이 밀고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이번 쿠르드의 좌절은 몇가지 사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첫째, 어떤 민족이든 한번 어그러진 역사를 바로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냈다. 국제 정치는 엄혹하기 짝이 없어 약자에게 쉽사리 공간을 내어주지 않는다.
쿠르드인 IS 격멸 공로도 물거품
강대국의 계산에 의해 네 나라로 쪼개어져 들어간 쿠르드족은 소수 민족으로서의 최소한의 자치권을 얻기도 버겁다.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정부 (KRG) 정도만 존재감이 드러날 뿐, 여타 국가에서는 존재감이 미약하거나 아니면 민족 정체성 자체가 금기시 되고 있다. 이 와중에 모처럼 존재감을 드러낼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인류 공공의 적 IS와 맞서 싸우며 시리아의 쿠르드 민병대는 총을 잡고 수류탄을 쥐었다. 그러나 IS 격멸에 일등공신임에도 강대국 국익과 엇갈리면 버림받는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두 번째, 여전히 국제정치는 국내정치의 종속변수라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의 완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선언했다. 1000여 명 내외의 시리아 주둔 미군은 대규모 전투 병력도 아니고 주둔 비용 부담도 크지 않다. 적은 비용으로 미국의 존재감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포석이기도 하다. 테러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피 흘리며 싸운 쿠르드를 지켜줌으로써 미국의 동맹 신뢰도를 높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의 국내 정치 환경은 다르다. 대중은 국제 분쟁 개입에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철군 발표 직후 실시된 미국 내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8%가 트럼프의 결정을 지지했다는 사실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선거를 앞 둔 트럼프다. 빠르면 추수감사절, 늦으면 크리스마스에 테러전선에서 싸우던 미군 장병들이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는 그림을 상상해보자. 선거에 유리한 그림 아닌가. 국제정치의 독법으로만 세상을 읽기 어려운 시대다. 각 행위자들의 국내 여론과 정치 기상도를 함께 읽어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번 사태를 통해 미국의 동맹 정책이 얼마나 심각하게 바뀌었는지도 이번 사태로 여실히 드러났다. 쿠르드 방기(放棄)는 충격적이다. 친구를 버리고 갈등 중인 터키 편을 든 셈이다. 피를 흘려 함께 싸워도 이익 계산에서 밀리면 버려지는 비정함이 국제정치의 본질이다. 미사여구로 분칠하지 않은 국익 계산의 민낯이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