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간 합동군사위원회 개최를 하루 앞두고 러시아가 군용기를 무더기로 보내 한반도를 3면에서 포위하다시피 비행한 것은 한국의 KADIZ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무력시위로 풀이된다.
두 달 만에 또 진입…군 대응 출격
한반도 주위 네 번 헤집고다녀
“사실상 한국 정부 무시” 지적
러시아 “정례비행 국제규범 준수”
나머지 TU-95 2대는 KADIZ를 넘나들며 동·남·서해를 훑었다. 이들 TU-95 편대는 11시10분 포항 동방으로 내려갔다가 일본방공식별구역(JADIZ)으로 비행하더니 11시58분 제주도 남방에서 KADIZ에 재진입해 제주도와 이어도 사이를 지나 서해로 북상했다.
한·러 군사위 열리기 전날 … 러 군용기 올 20번째 카디즈 진입
TU-95 2대는 오후 3시1분엔 울릉도 동북방 KADIZ에서 SU-27 2대를 만났다. 이들 SU-27 2대는 울릉도 북방에서 KADIZ 안으로 진입해 TU-95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합참은 설명했다. 합류한 SU-27 2대와 TU-95 2대는 오후 3시13분에야 울릉도 동북방에서 KADIZ를 벗어났다. 동·서·남해 KADIZ 헤집기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합참 관계자는 “22일 네차례를 포함, 올해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총 20회”라고 말했다.
군 당국은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 즉시 F-15K 등 10여 대의 공군 전투기를 긴급 투입했다. 군 관계자는 “우리 군이 경고통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고 말했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은 아니지만 다른 나라 항공기가 진입하기 전 사전 통보하는 게 국제 관례다. 합참 관계자는 “사전에 러시아 측의 통보가 없었다”며 “하지만 한국 영공을 침범하진 않아 감시비행과 경고통신 외에 다른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내부에선 러시아 군용기의 이날 KADIZ 진입을 이례적으로 보고 있다. 모두 세 종류, 총 6대에 달하는 군용기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 러시아 군용기가 KADIZ를 진입한 건 지난 8월 8일이었는데, 당시엔 초계기 TU-142 2대만 등장했다. 무엇보다도 22일 러시아 군용기의 KADIZ 진입은 양국 합동군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벌어졌다. 23일부터 이틀간 서울에서 열리는 이번 회의에선 핫라인 설치 등이 논의된다. KADIZ 무단 진입이나 영공 침범을 막기 위해 추진된 방안이다. 이 때문에 이날 KADIZ 무더기 진입은 사실상 한국 정부를 무시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외교부는 이날 레나르 살리믈린 주한 러시아 대사관 참사관을 초치해 유감 표명과 재발 방지를 요청했다. 러시아 국방부는 "폭격기의 정례 비행은 국제규범을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KADIZ 진입을 정례화하겠다는 뜻이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