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NN 등 주요 언론은 칠레 시위가 격화하며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이 15일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비상사태가 선포되면 정부는 시민들의 이동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으며 치안을 위해 군인을 배치할 수 있다. 칠레 비상사태 선포는 군부독재 이후 약 30년 만에 처음이며 야간 통행금지령까지 떨어졌다.
블룸버그는 “1990년 피노체트의 독재가 끝난 이후 최악의 사태”라며 시위가 산티아고뿐 아니라 다른 도시로도 퍼져나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은 기폭제였을 뿐
그러자 그간 누적됐던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가디언은 “최근 일어난 시위는 경제적 어려움, 특히 공공요금 인상에 따른 불만이 누적된 결과”라며 중도우파 성향 피녜라 대통령이 그간 펼쳐온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산티아고의 물가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중남미 도시 중 최고 수준’으로 꼽혀왔을 정도로 악명이 높다. 칠레 1인당 GDP는 1만5000달러(2018년 기준)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지만 물가(농산물 제외)는 서울과 비슷하거나 높다. NYT는 시위대 인터뷰를 통해 “지하철 요금 인상은 이 시위의 기폭제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뜻 지하철 요금 50원(30칠레페소) 인상에 이 난리가 난 것 같지만, 이는 그간 쌓여온 분노에 불을 붙였을 뿐이란 얘기다.
NYT와 인터뷰한 시민들은 “그간 정부가 사람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 “정부 고위 공무원들은 우리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등의 분노를 표했다. 신문은 “생활비 상승, 비참한 수준의 연금, 열악한 공공 건강ㆍ교육 시스템 등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인상안은 "빈곤층과 중산층의 생계비가 급상승하고 임금은 정체된 최악의 시기"(NYT)에 발표돼 더욱 화를 샀다. 블룸버그는 “전기요금 10% 인상안을 발표한 지 불과 몇 주 만에 교통비 인상안이 나왔다”며 “피녜라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칠레의 곪아있던 속사정 드러나
블룸버그는 “최근 수십 년 동안 칠레는 불안한 여러 중남미 국가들 속에서 가장 차분하고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로 보였지만 이번에 그간 곪아있던 것들이 터져 나왔다”고 설명했다. BBC 역시 “역내 가장 부유한 나라로 꼽혔지만, 어마어마한 빈부 격차로 분열된 내부가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상황이 악화하자 피녜라 대통령은 19일 TV 생중계 연설에서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를 겸허히 듣겠다“며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철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시위대는 총파업을 예고하고 나섰다. BBC는 “수십 년 만에 터진 최악의 상황”이라며 “문화ㆍ스포츠 등 주요 행사가 줄줄이 취소됐고 번화가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으며 지하철 역시 운행을 멈췄다”고 보도했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