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이 2020년 하반기 출시를 목표로 개발 중인 리브라가 ‘세계 통화’로 군림하는 세상을 상상한 이야기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돈을 재발명하고, 세계 경제를 탈바꿈해 모든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도록 하겠다”며 암호화폐 발행에 출사표를 던졌다.
암호화폐 ‘리브라’ 내년 출시 먹구름
페이스북 사용자 23억명 이용땐
달러 등 세계 통화질서 위협 가능
“돈 아니다” 트럼프·유럽 극렬반대
마스터카드·비자·이베이 빠져
◆국가 단위 통화체제 뒤흔드나=화폐 당국의 반발은 페이스북의 암호화폐가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암호화폐는 중앙집권형 통화질서 자체를 부정한다. 블록체인(분산저장) 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암호화폐는 중앙은행을 비롯한 중개기관 없이 모든 거래가 가능한 구조다.
이처럼 막대한 수의 사용자를 확보한 페이스북의 각종 서비스에 송금과 결제 기능이 결합하면 그 파급력은 엄청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가 중국이다. 중국은 노점상에서도 현금 대신 위챗페이와 알리페이로 결제를 받는다.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리브라가 기존 통화질서를 전복할 수 있다는 것에 각국 정부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리브라가 돈세탁·인신매매 등 범죄에 악용될 수 있다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속내는 통화정책의 영향력을 잃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법정 화폐에서 리브라로 자금이 쏠리는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고, 국제 자본 이동과 관련한 각국 정부의 정책적 대응 능력에 제약이 생길 수 있어서다. 달러 중심의 세계 기축통화 경쟁에도 리브라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며 달러 패권에 도전장을 내민 각국의 셈범도 복잡해지고 있다.
때문에 각국 정부는 리브라에 맹공을 퍼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의 진짜 통화는 단 하나”라며 “리브라는 돈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지난달 공식적으로 유럽에서 리브라 거래를 금지했다. 세계적인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자 존 맥아피는 “각국 정부와 암호화폐 사이에 이미 ‘전선’이 그어졌다”고 진단했다.
◆“금융 소외계층 포용을 위한 수단”=리브라에 대한 공격에 맞서는 페이스북의 방어 논리는 금융소외 계층을 위한다는 ‘고결한 명분’이다. 선진국 국민은 리브라 같은 새로운 화폐가 필요없겠지만, 개발도상국의 상황은 다르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백서에서 “(리브라는)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세계 17억명의 성인을 위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리브라를 개발하는 자회사 칼리브라는 “개발도상국 소상공인의 약 70%는 신용이 없고, 이주노동자는 매년 송금 수수료로 250억 달러를 쓰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브라 연합에 ‘포용적 금융’을 위한 활동에 앞장서온 비영리 기구 네 곳이 참여한 이유기도 하다.
마이클 케이시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미디어랩 ‘디지털 통화 이니셔티브’ 수석 고문은 “이제껏 은행을 이용하지 못한 인구가 리브라를 통해 새롭게 세계 경제에 편입된다면 그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말했다.
리브라를 경계하는 각국 정부도 자체 디지털 화폐 발행에 나서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 인민은행은 다음달 11일 중국 최대 온라인 쇼핑 축제인 광군제에 맞춰 1000억 위안(17조원) 규모의 독자적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도 자체 암호화폐 구상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화폐 전쟁』의 저자인 쑹훙빙은 “각국 정부는 결국 암호화폐를 제도권에 편입해 통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